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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보자기 아티스트, 자연주의 살림꾼, 베스트셀러 작가…. 이효재씨(67)를 수식하는 말은 무척 다양하다. 5년 전부턴 ‘괴산 주민’이라는 호칭이 하나 더 생겼다. 괴산은 그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고 있을까. 이씨의 충북 괴산 집으로 향했다.
이씨는 한복집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이어 한복 디자이너가 됐다. 유명인의 혼례용 한복과 사극 의상을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다. ‘가왕’ 나훈아도 그의 오랜 고객이다. 2000년대 중반부턴 여성 잡지가 그의 ‘자연주의 살림법’을 조명했다. 서울 근교에 살며 텃밭에서 농사지어 차려낸 한상,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민 집 안 곳곳은 그를 주부들의 ‘워너비’로 만들기 충분했다. 2000년대 후반엔 보자기로 선물을 포장하는 방법을 소개하며 ‘보자기 아티스트’라는 새 직업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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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포장지 대신 보자기를 사용하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오방색 고운 비단 천으로 만든 보자기는 한국의 전통을 표현하기에도 더없이 좋더군요. 비싼 선물이 아니더라도 보자기로 예쁜 꽃을 피워내면 받는 사람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귀빈들은 그의 한복집에 들러 한복과 보자기가 지닌 매력을 배워 갔다. 그 역시 해외 곳곳을 다니며 우리 전통을 알렸다. 국내외를 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던 이씨가 괴산에 온 건 2020년 1월. 자신의 시골살이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기획되면서 괴산에 집을 얻었다. 그 전엔 괴산에 가본 적도 없었다. 이씨는 서울과 괴산을 오가는 ‘5도2촌’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을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이씨와 괴산의 연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한복과 보자기에 대해 가르치는 게 제 직업이에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못 모이니 강의가 열리지 못했죠. 서울 집에 있기보다는 괴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택했어요.”
이씨의 괴산살이를 두고 지인들은 “거기 인구소멸지역 아니냐” “산밖에 없지 않냐”며 한마디씩 건넸다. 이씨는 오히려 그 점이 좋다고 말한다. 서울의 교통 체증이 없는 곳, 마당에 앉아 산봉우리가 몇개인지 헤아릴 수 있는 곳, 그가 괴산을 사랑하는 이유다.
이씨는 2층짜리 집에 산다. 1층은 손님을 위한 부엌과 다실이 있는 공간, 2층은 그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1층에 들어서자 식탁 위에서 활짝 핀 개살구꽃이 사방을 환히 밝히고 있다.
“뒷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를 꺾어 왔어요. 따뜻한 방 안에 두면 얼마 있지 않아 꽃이 피죠. 저희 집엔 봄이 이르게 와요.”
정작 봄에는 집에 꽃을 두지 않는다는 이씨. 문만 열고 나가면 사방이 꽃밭이라 그렇단다. 부엌 옆 다실에선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위한 강의를 진행한다. 가운데에 파인 홈으로 물이 졸졸 흐르는 테이블, 벽 한면을 빼곡히 채운 대나무가 정취를 자아낸다. 수업은 괴산의 자연 속에서도 열린다. 조선 중기 문신 노수신이 귀양살이한 ‘수월정’, 송시열을 매료시킨 ‘화양구곡’, 이황과 정철이 사랑한 ‘쌍곡구곡’을 함께 거니는 것이다.
충북 곳곳에서도 그의 수업을 만날 수 있다. 청주 초정행궁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보자기 포장법을 가르친다. 2021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해엔 증평군농업기술센터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보자기 포장법과 전통 문화에 관해 소개했다.
“국산 농산물 품질이 정말 좋잖아요. 농산물 소비가 늘고 해외 수출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예쁜 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촌과 농민도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죠.”
에세이부터 여행기·동화까지 책 스무권을 출간한 이씨. 2016년 이후 신간이 없던 그는 올해 6월, 9년 만에 새 책을 낼 예정이다. 괴산에서의 삶이 책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랜만에 독자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요. 시골에 살기 두려운 분도 제 책을 읽고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거예요.”
괴산=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