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 시즌이다. 매해 가을, 전자우편함은 바빠진다. 대학원 진학, 직장 지원, 승진 등 여러 상황에서 추천서를 요청한다. 부탁하는 사람에게는 커리어가 달린 문제이기에, 부담은 한숨처럼 깊어진다. 열 개, 스무 개의 추천서를 써야 하는 해도 있다.
신기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글 쓰는 데에 쏟아붓지만, 막상 작성자에게 오는 보상은 없다. 선물과 함께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은 금기이다. 물질로 의견을 사거나 팔 수는 없기에. 부탁한 사람에게 생색을 낼 수도 없다. 편지의 내용은 영원히 비밀이고, 이를 어기는 것은 심각한 비윤리이다.
업무의 강도도 천차만별이다. 극단적인 경우는 쉽다. 누가 보아도 재능이 명백하다면, 한 페이지도 충분하다. “이 학생은 천재입니다” 한 줄로 유명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반대 극단이라면 미리 부탁을 거절하거나, 성과만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사이에 있다. 차세대 육성은 원래부터가 어려운 농사이다. 어느 씨앗이 얼마나 위대한 작물이 될지 누가 감히 속단하겠는가. 약간은 흐릿한 눈으로, 성과보다는 미래를 상상하며 평가해야 한다. 이런 경우, 왜 잠재력이 있다 생각했는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말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존경하던 수학자들의 추천서도 종종 만난다. 그런데, 그렇게 찬란한 업적을 쌓으며 바쁘게 사는 수학자들이 오히려 더욱 성실한 추천서를 보내온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진학과 이직의 기나긴 과정에서 나 또한 그러한 은인들의 추천서를 받아왔었지. 시간이 없다는 것, 소득이 없다는 것은 핑계였구나. 수학자 모두는 수학계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토양을 수천 년 비옥하게 가꿔온 것은, 보상보다는 보람을 우선시하는 마음이었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