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는 학생과 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다. 강사·여사님으로 불리는 ‘선생님 아닌 선생님’들이 일하는 또 다른 교실이 있다. 이들이 없다면 학교는 금세 멈춰 설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이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의 처우는 늘 뒷전이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낮은 보수와 강도 높은 노동에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죽음의 급식실’이란 원성이 자자하다.
급식·돌봄을 담당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0일부터 권역별 릴레이 파업에 들어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체계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불가피하게 꺼내든 카드다. 이들의 기본급은 206만6000원으로, 최저임금(209만6000원)에도 못 미친다. 급식실은 일이 힘들기로 악명이 높다. 무거운 식자재를 쉴 새 없이 나르고 뜨거운 불 앞에서 대량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발암물질인 기름 매연을 들이마시며 일하다 지금까지 178명이 폐암 산재 판정을 받았고, 15명이 사망했다. 학생들이 누리는 ‘정상적인 급식’은 급식노동자의 과로와 고통의 산물이다.
이런 사정을 정부와 교육당국이 모를 리 없건만, 땜질식 처방만 난무한다. 인력을 충원하고 환기시설을 개선해달라고 했더니, 조리 로봇을 도입하는 식이다. 로봇 구입에 들어가는 예산을 시설·처우 개선에 썼더라면 형편은 나아졌을 것이다. 그래놓곤 학생들을 볼모로 한 파업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정작 학생들을 방패 삼아온 것은 국가와 교육당국 아닌가.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숨 못 쉬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목이 쉬는데/ 감사합니다! 이 말 들으려다 열이 나는데/ 당신은 정말 감사합니까?”
지난해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가 진행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용현 학생의 시 ‘감사합니다’ 일부분이다. 마지막 질문은 국가에 던지는 것이라는데, 대답이 궁금하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고마움을 모르게 된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수고를 부모를 대신해 급식노동자들이 해왔다. 이들의 건강권은 자신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불편을 감수하고 급식노동자들의 파업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