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이전과 함께 추진된 ‘청와대 개방사업’의 이면에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달 청와대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는데 그간 청와대에서 일해온 하청노동자들은 오히려 해고 위기를 맞았다.
“한마디로 ‘런던베이글뮤지엄’”…열악한 환경 토로하는 노동자들
“‘런베뮤’(런던베이글뮤지엄)가 따로 없어요”. 2023년 10월부터 청와대에서 방호직으로 일한 이모씨(38)의 첫마디다. 이씨는 최근 인천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20대 노동자가 주 80시간 넘게 일하다 과로사한 일을 떠올렸다.
방호직 노동자들은 하루 11시간 내내 서서 출입자 확인·관람객 통제·순찰 등을 한다. 인력이 부족해 이틀간 35시간을 일한 적도 있다. 이씨는 한여름 폭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늘막이 있었지만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근무지에서 5m 떨어진 곳에 설치돼 사용할 수 없었다. 화상 환자도 속출했다.
휴게시간 3시간도 출동대기를 해야 해 온전히 쉬기 어려웠다. 나머지 시간엔 앉지도 못했다고 한다. 제공되는 유니폼은 한 벌뿐이라 온몸이 땀에 절어도 빨래조차 하기 어려웠다. 휴게실엔 한겨울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용역업체 관리자는 폐쇄회로(CC)TV와 무전기로 이들의 위치와 행동을 상시 통제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보고해야 했고, 다녀오면 “왜 15분 넘었냐”며 추궁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청와대 안내직 A씨는 하루 2만보를 걷는다. 폭염·폭우·폭설에도 우산이나 모자를 쓸 수 없다. 강한 자외선에 안구 질환이 생기고, 앉아서 쉬지 못해 아킬레스건염이 발생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았다.
안내직은 한 달 단위로 고용계약이 갱신돼 매달 사직서를 써야 하는 때도 있었다. 매달 계약이 종료되는 날 업체 관리자는 “사직서 쓰고 퇴근하라”고 했다. 사직 사유란에는 ‘개인 사유’라고 적도록 강요받았다. 지난 8월 청와대 개방이 끝나 강제휴업에 돌입하자 ‘휴업 기간 중 사측 이미지 훼손 시 해고·징계 가능’ 문구가 적힌 확인서를 써야 했다.
미화직 김성호씨(60)는 임금 체불을 겪었다. 마스크, 장갑 등 기본 장비조차 지급되지 않아 자비로 사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김씨는 청와대 노조를 조직했는데, 용역업체 비리에 항의하며 업체 변경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청와대는 하루 최대 8000명이 드나드는 관광지로 변신했지만 기본적인 운영 가이드라인도, 노동자 안전대책도 없었다. 운영을 맡은 청와대재단은 다시 민간 용역업체에 업무를 넘겼다. 고용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악성 민원인의 반말·폭언에도 노출됐다. 지난해 1월부터 안내직으로 일한 B씨는 잔디밭에 들어가거나 경내에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관람객을 제지했을 때 “세금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놈들이 XXX가 없다”는 모욕을 들었다. 욕설을 듣기도 했다. B씨는 “심장이 벌렁대고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관람객에게 폭행당한 직원도 있었다.
노동자 보호 조치는 없었다. 업체는 “차분한 음성으로 안내하라”거나 “‘안 됩니다’ 같은 부정적 표현을 쓰지 말라”는 지침만 내렸다. 민원이 발생하면 벌점을 주거나 경위서를 쓰게 했다. 벌점 10점이면 감봉, 15점이면 정직 또는 해고할 수 있었다.

방호직 노동자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50대 노동자 C씨는 야간 근무 중 정문 앞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그는 “우리는 함부로 손을 대서 제압할 수도,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다. 그냥 맞아야 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재단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체부는 “재단 경영권 침해”를, 재단은 “문체부 책임”을 말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상징인 공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실망감이 깊었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청와대는 너무 좋은 공간이지만 운영은 생지옥이었다”고 말했다.
문제의 뿌리는 2022년 5월 청와대 개방 당시 정부가 미화·시설·안내 등 필수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새로 만든 청와대재단에 전적으로 맡긴 데 있다. 기존에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상시·지속 업무 인력을 직접 고용해왔다.
재단은 용역업체들과 1년 단위 계약을 맺는 구조를 만들었다. 실사용자인 대통령실과 문체부는 고용 책임에서 빠졌다. 이 하도급 구조는 관리 부실로 이어졌다. 입찰규정 위반, 재하도급·계약 미준수, 친인척을 중간관리자로 앉히는 채용비리 의혹까지 제기됐다.
업체들도 나름의 어려움을 밝혔다. 청와대 개방이 갑작스럽게 시작됐고 이후 탄핵과 사업 중단까지 이어지면서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올해 1월부터 안내용역을 맡은 ‘올댓아이엠씨’ 측은 “예고 없이 사업이 시작되고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돼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A씨는 “문재인 정부 때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정규직 전환 정책도 있었고, 최근 노란봉투법도 통과됐지만 정작 대통령실은 뒤에 숨어 해고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도 “계엄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청와대 노동자는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10일 대통령실은 청와대 복귀를 발표했고, 지난 8월부터 청와대 개방은 중단됐다. 노동자들도 이때부터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올해까지는 재단·용역업체 계약이 유지되지만, 내년부터는 계약 종료와 함께 노동자 200여명의 집단 해고가 예상된다.
대통령실 이전이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대통령실·문체부·청와대재단 어느 곳도 고용보장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노동자들은 대통령실에 면담을 요구했고 9월 한차례 면담, 구체적 대책은 없었다. 청와대재단은 설립 3년 만에 해체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청와대 개방사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들은 우리 노동자들”이라며 “노동자들의 생존이 무시된다면 청와대는 국민의 공간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일부 개방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3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와 경험이 있는 노동자와 그 정보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지난 17일 용산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에서 미화직 노동자 임동용씨는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냥 잘려도 된다는 말인가”라며 “경험과 노하우로 계속 일하고 싶다. 제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도 “노동자 권리와 안전을 강조해온 대통령이라면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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