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창립자이자 CEO인 젠슨 황은 올해 초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5년 전만 해도 AI 컴퓨팅 혁명을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AI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듯이, AI를 활용한 첨단 바이오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듯, 바이오 기술은 미래 혁신을 이끌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첨단 바이오 산업을 전략기술로 지정해 투자를 확대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오 산업은 자본, 인력, 기술력이 함께 필요한 산업으로,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만으로 상업화를 이루기 힘들다. 바이오 분야의 혁신적 연구 성과는 유사 대체 기술이 드물고, 시장가치가 매우 높지만, 기술사업화를 할 때 성공의 불확실성이 크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특성이 있어, 바이오 기술 기반 창업에는 높은 진입 장벽과 복잡한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바이오 기술 기반 창업은 사업화 가능성이 불확실한 초기 과학적 성과를 발전시켜 사업화 연계 단계까지 개발 후 이전해 산업에 혁신을 공급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 기술 기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핵심은 연구자의 혁신적 연구 성과가 실험실 책상 서랍 속에 갇히지 않고, 실제 시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사업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전과 실패의 벽을 넘어야 하며, 실험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일례로,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지속적 투자를 얻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목표와 더불어 신뢰를 줄 수 있는 마일스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던 연구자가 혼자의 힘으로 창업에 도전한다면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실 성과를 시장으로 연결하는 바이오 기술 창업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창업 아이템을 보유한 연구자가 쉽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되, 보유한 기술을 토대로 시장 진입 시점과 비즈니스 모델 세팅 등 사업성까지 고려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자원과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창업에 도전하는 연구자가 창업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장기적인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도록 주식이나 지분 형태의 보상 체계와 스톡옵션 등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실험실의 연구 성과부터 창업 후 성공 스토리 창출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미국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과 같은 벤처 스튜디오 모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탑3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은 내부 연구조직을 활용, 바이오 신기술 기업을 직접 설립하고 육성하는 창업형 벤처 캐피탈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바이오 유망기술 발굴부터, 임상 등을 위한 연구개발, 팀 빌딩, 후속 투자 유치, 기업 홍보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기획 창업을 통해 창업 이후 생존율을 높이고 성공모델을 만드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창업기업 큐어버스는 글로벌 제약회사와 먹는 치매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신약 개발 성공을 가정할 때, 약 5,000억 원 규모의 계약으로, 연구자의 탁월한 연구 성과를 긴 호흡의 체계적 지원이 숙성시켜서 좋은 성과를 이루어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큐어버스는 바이오 기업 출신 외부 전문가와 창업 아이템을 보유한 KIST 연구자를 일대일로 매치하여 창업을 지원하는 'KIST 바이오스타' 프로그램을 통해 2021년에 창업하였다. 창업 이후 시리즈 A 투자를 받고, 국책과제 지원 등을 통해 신약 개발 및 임상을 위한 후속 연구개발을 지속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처럼 해당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연구자가 직접 창업에 참여할 때 성과를 배가시킬 수 있으며, 사업화를 위한 장기적 자금 지원과 인프라, 우수한 인재들이 뒷받침될 때, 바이오 창업기업이 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수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suyoungchoi@kist.re.kr
김원배 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