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車·선박이 스스로 충전 후 전기 배분…신재생 걸림돌 넘는다

2025-05-21

“서해 문갑도에 태양광·풍력이 부족하네요. 인근 덕적도에서 전기 선박을 보내 나눠주죠.”

21일 찾아간 광주광역시 남구 한국전기연구원 스마트그리드연구본부. 연구자들이 전자 칠판처럼 생긴 대형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화면에는 인천 옹진군 일대 섬들의 지도와 개별 섬의 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공급량이 ㎾(킬로와트) 단위로 실시간 표시됐다. 실제 발전 상황을 반영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해 전기가 낭비되거나 부족한 일이 잦다. 이에 연구자들은 ‘움직이는 배터리’, 이른바 양방향충전(V2G) 수단으로 가상의 전기 선박을 도입했다. 남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전력을 고르게 배분해 옹진군 도서 권역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얼마나 효율화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스마트그리드연구본부에서는 다양한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연구개발(R&D)이 한창이었다. 스마트그리드는 에너지 수급을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정보기술(IT) 일체를 말한다. 최근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믹스와 함께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에너지 신기술로 주목받으며 관련 지원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능형 전력망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재생에너지 활용도 제고’와 ‘분산 에너지 활성화’를 10대 공약에 포함시켰다. 양당 모두 스마트그리드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세계적으로도 시장 규모가 2030년 1600억 달러(220조 원)로 예상된다.

김태현 전기연 스마트그리드본부장은 “신재생에너지는 공급이 불규칙한 데다 여러 군데에 잘게 흩어져 수급 모니터링이 거의 안 되고 있다”며 “다만 발전 비중이 무시 못할 수준이 된 만큼 모니터링은 물론 예측까지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기는 저장 비용이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준 ㎿(메가와트)당 5억 원 정도로 비싸 가급적 생산되는 대로 소비돼야 하기 대문이다. 화력은 연료량으로 생산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그렇지 않다. 자연적으로 전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미리 수요를 맞춰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그리드 핵심 기술로 직류(DC) 전환, 가상발전소(VPP), 배전망 관리 등 세 가지가 꼽힌다. 세계적으로 아직 제대로 상용화하지 않아 선점 경쟁이 치열한 기술들이다. 이 가운데 직류 전환은 신재생에너지의 전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 김 본부장은 “기존 화력으로 생산되는 전기는 교류(AC)인 반면 태양광으로 만들어지는 전기는 직류이기 때문에 둘을 함께 쓸 수 있는 전력망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직류로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를 기존 교류 전력망에서 쓰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교류로 변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연은 이에 올해 하반기 기존 교류 전력망에 중전압직류(MVDC)를 융합하는 약 600억 원 규모의 ‘AC·DC 하이브리드 배전망 테스트베드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교류 배전망의 MVDC 전환은 세계 최초 도전이다. MVDC는 직류 중에서 신재생에너지 전송에 적합하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기술이다. MVDC는 기존 송전망이라는 고속도로가 아닌 복잡한 골목길(배전망)을 따라 구석구석 흐르는 전기다. 신재생에너지는 지역에서 만들어져 인근에서 바로 사용되기 때문에 고속도로가 아니라 골목길을 따라 흐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공급이 불규칙해 일시적 과부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흐름을 제어하는 기술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배전망 관리다. 분산전력시스템연구센터 내부에 전선이 가득 든 캐비닛 모양의 배전망 시험 장치 수십 대를 두고 기술 테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일부 전선이 낡은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일부러 현실 같은 악조건을 만들어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진홍 센터장의 설명이다. 또 VPP는 전력 수급을 예측하고 중개하는 IT 플랫폼이다. 에너지플랫폼연구센터는 전기연 창원 본원의 실제 전력 수급 상황을 VPP로 구현해 국내 최고 수준인 90%대 예측 정확도를 달성했다. 화면에는 소비 전력과 공급 전력, 또 보조 배터리인 ESS 4대의 잔량과 온도·습도까지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기존 전력이 과부하로 전기료가 비싸질 경우 ESS로 대체해 절감하고 이런 패턴을 학습해 이후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전기차, 전기 선박 같은 V2G 기술 역시 상용화하면 스마트그리드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연구동 밖에도 자율주행차 한 대가 ‘자율주행 V2G 전기차 전용 충전기’에 연결돼 있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맞춰 차가 스스로 돌아다니며 전기가 남는 곳에서 충전하고 필요한 곳에 나눠주는 기술도 실증까지 진행하며 준비 중인 것이다. 또 날씨에 따라 바뀌는 발전량에 맞춰 전기차 충전 요금을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수요 분산을 유도하는 ‘실시간 요금제’ 같은 다양한 스마트그리드 서비스도 향후 가능할 것으로 김 본부장은 내다봤다.

이 같은 비전은 정부의 2050년 탄소 중립 계획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선 2023~2027년 5년간 3조 7000억 원을 투자해 AC·DC 하이브리드 배전망 기술 개발, V2G 제도와 한국형 VPP 도입 등을 목표로 하는 ‘제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며 전기연이 이를 위한 R&D를 지원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LS일렉트릭 등 전력 기기 업체들이 ESS·직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전력망복원력혁신파트너십프로그램(GRIP) 등을 통해 스마트그리드에만 30억 달러, 송배전 기술 솔루션에 25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글로벌 경쟁도 거세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