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 형사 역의 송강호가 사건 발생 10여년 후에도 살인 현장 수로를 뒤지는 모습이 나온다. MBC 사장을 지낸 최승호 PD도 형사가 흉악범을 쫓듯 17년째 4대강 녹조를 뒤지고 다닌다. 이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최근 개봉작 <추적>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 굳이 산하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만들려다 실패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변형으로 추진한 게 ‘4대강 정비사업’이었다. 홍수와 가뭄 피해를 막는 공사만 하겠다고 했지만, 종국엔 원래 운하 계획대로 강바닥을 깊게 파 생태계를 훼손하고 물길을 바꾸고 보로 가둬 녹조가 창궐하게 됐다고 한다.
이 일은 ‘합리적 토론으로 공익적 판단을 내리는 공간’으로서의 공론장이 한국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도 한국은 1970~19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석면 사용 건축을 허용했다. 관련 학자가 실태를 조사할라치면 ‘기관원’ 등이 쉽게 제압했다. 민주화 이후엔 국가가 연구비 제한 및 왕따 취급 등의 압력을 행사한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한 후 정부 자문역 및 연구비 수혜 등에서 제외됐다고 밝힌다. 주류학자들의 침묵 속에 어용학자들만 목소리를 낸다.
환경부 공무원들도 이명박 정권 시절의 일이 불거질지 우려해 눈 가리고 아웅 식 녹조 측정 방식으로 사실을 덮는 듯하다. 녹조가 심한 낙동강 지역 국민의힘 지자체장 또한 4대강 사업을 옹호하며 정파적으로 접근해왔다. 영화를 보니 해당 지역 농업에는 강물을 끌어다 써야 하는데 물을 가두어 녹조를 일으키는 보를 해체하면 수면이 낮아져 높은 곳의 취수구로 물 공급이 안 된다. 그래서 정작 피해자인 농민들도 보 해체에 반대다. 취수구를 낮추면 될 테지만 지자체장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농민들은 독성 녹조 물을 끌어다 벼를 키우고 쌀을 만들어 전국에 판다.
언론도 최 PD의 폭로를 거의 외면해왔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지만 ‘조선일보’만이 반박 기사를 가끔 실어 보 옹호 진영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을 뿐이다. 권력이나 기업의 비리, 구조적 문제에 대한 단독 보도가 주류 언론의 침묵 또는 소극적 반응으로 고립되는 전형적인 사례다. 때론 검증 없이 양측의 상반된 말을 옮기기만 하니 사실도 한쪽의 주장에 불과하게 되고 만다. 어쩌다 초기에 외톨이가 된 보도라도 권력 교체나 자극적 소재의 폭로 등 변곡점이 생기면 비로소 폭발적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도 2020년부터 시작한 ‘뉴스타파’의 의혹 제기에 미온적이던 언론들이 최근 특검이 시작되자 앞다퉈 붐에 올라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집중하니 언론들도 그간 없던 일이 갑자기 생긴 듯 따라간다. 4대강 문제에는 최 PD 스스로가 영화라는 형식으로 정권교체에 따른 중대 계기를 만들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이것이 권력과 자본의 제약 아래 지식이 생산된다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지식사회학’이다. 극심한 경쟁 환경에서 상업 미디어가 복잡한 사안을 추적하거나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심층적일수록 품만 많이 들고 시선은 끌지 못한다. 독립 언론 뉴스타파 경영진조차 현안 보도에 집중하는 효율적 조직을 만들겠다면서 4대강에 몰두하는 최 PD의 사직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유는 당연히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된 공영방송 몫이다. 영국 BBC는 2017년 7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블루 플래닛 Ⅱ>로 해양 플라스틱 오염에 대해 경고하고 국내외 다른 언론들이 호응해 플라스틱 일회용기 금지 등의 변화를 이끈 바 있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방송 3법 개정안 등 방송개혁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