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기술을 꿈꾸다

2025-10-15

혁신을 만나다

윤석원 에이아이웍스 대표

에이아이웍스(AIWORKX)는 경력단절여성·발달장애인·청각장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AI기업’이다. 취약계층을 고용한다는 표현은 이제 쓰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만난 윤석원(53) 대표는 “취약계층이라는 말 자체가 편견”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약점이 아닌 강점에 집중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직원들은 집중력이 아주 뛰어나요. 반복적이고 세밀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데이터 라벨링’에 특화돼 있죠. 데이터 라벨링으로 시작해 소프트웨어와 모델을 테스트하는 고난도 작업까지 하게 된 발달장애 직원도 있어요.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회사가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회사가 설립된 건 2015년. 올해로 10주년이 됐다. 4명이던 직원 수는 170명을 넘어섰고 기업가치 1000억원을 인정받는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윤석원 대표가 에이아이웍스 10년의 여정을 담은 책을 썼다. 책 제목은 ‘콜링(Calling)’. 소명이라는 뜻이다.

기회를 주고 싶어서

원래부터 창업 생각이 있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며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죠. 2015년 여성인력센터에서 경력단절여성들을 ‘소프트웨어 테스터’로 양성하는 강의를 개설했다면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왔어요. 일자리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IT 전문가로 키우고 취업까지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죠. 평일 오전 강의라 회사에 다니면서 병행하는 게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삼성전자를 퇴사하기로 했어요.”

보통은 퇴사를 하는 게 아니라 강의를 거절하죠.

“대기업에 일하면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어요.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경력단절여성을 IT 분야에 재취업시키는 프로젝트를 선택한 이유죠.”

15명의 경력단절여성들을 대상으로 200시간 강의를 했고 이 중 80%가 국제 자격증을 취득했다. 금방 취업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윤 대표는 직접 회사를 차렸다.

창업이 보통 일이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뭔가요.

“미국에서 처음 취업했을 때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스타트업에 입사했는데 왜 제가 뽑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영어도 잘 못했고요. 대표님에게 날 왜 뽑은 거냐고 물었더니 ‘너에게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어요. 한국에 와보니 미국보다 훨씬 차별이 심했어요.”

기회를 주고 싶어서 창업했다?

“기술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경력단절여성처럼 시스템 밖에 있는 이들에게 기술의 문턱을 낮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사회적기업을 만들었어요.”

경력단절여성을 ‘소프트웨어 테스터’로 양성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회사가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MYSC 김정태 대표가 ‘자폐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같은 교육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이미 덴마크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반복적인 작업을 지루해하지 않는 자폐인의 특성에 주목해 소프트웨어 테스팅 교육을 하고 독일 대기업에 취업을 시킨 케이스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명을 뽑아 교육을 진행했고 셋 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지나치지 않는 사람

창업한 걸 후회한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 너무 많았죠. 경제적으로 힘들었고요. 초반에 투자자들을 만났는데 반응이 차가웠어요. 비영리로 해야 한다, 비즈니스가 안된다는 반응이었죠. 경력단절여성과 자폐성 장애인이 일하는 IT회사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투자도 받았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있나요.

“생각나는 분은 김정태 대표님.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잖아요. 김정태 대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저희 홍보를 다 해주셨어요. 진심으로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저희에게 처음 투자해 준 D3쥬빌리파트너스의 이덕준 대표님. 진짜 좋은 투자자이자 멘토죠.”

연 매출 100억원을 넘어서고 직원 수도 100명을 넘어설 무렵 큰 고비가 왔다. 회사 시작 때부터 함께 했던 임직원과의 갈등, 번아웃, 스트레스가 겹쳐 병원에 실려 갔다.

심각했네요.

“그때 30명 정도 되는 장애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어요. 반기에 한 번씩 하는 장애인 직원 부모 간담회에 참여했는데, 한 어머니가 제 얼굴을 살피더니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어요. ‘우리 아이가 20년 이상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주세요.’ 그때 저희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어떤 분이셨나요.

“영화에 나오는 ‘홍반장’ 같은 분이었죠. 가난한 사람, 어렵게 사는 이웃을 보면 지나치지 못했어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기어이 해결책을 만드셨죠. 밥과 반찬을 나르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포장마차를 열어 주기도 했어요.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지키려 애쓰셨죠.”

어머니를 닮으셨네요.

“영향을 많이 받았죠. 20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실종됐고 한 달 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셨어요.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상실의 경험을 통해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절망,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됐죠. 그날 간담회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저도 이분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책 제목을 ‘콜링’이라고 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창업이란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결국 자기 안의 소명을 깨우는 과정이 아닐까요.”

에이아이웍스의 비즈니스는 진화 중이다. 테스트하는 회사로 시작해 AI데이터를 구축하는 일을 하게 됐고, 데이터와 모델을 검증하는 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사람처럼 상담하고 답변하는 AI 에이전트 사업까지 진행한다.

코스닥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2027년 1분기 상장이 목표다. 윤석원 대표는 “이렇게 판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웃었다. “나날이 겸손해집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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