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인문학] 살기 위한 행위 ‘쌀의 재배’

2025-01-17

영양사 딸에게 전하는 밥의 인문학

농경(農耕)이 시작되면서 쌀은 우리의 ‘주식(主食)’이 되었다. 쌀은 곡류 중에서도 후발주자인데 어떻게 주식이 되었을까.

주식이라면 항상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 기본이며, 안정적인 공급도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량 제공, 즉 칼로리가 뛰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식물이 서양에서는 밀이고 아시아권에서는 쌀이다.

문헌상 우리나라에서 벼농사의 시작은 서기 33년(백제 다루왕 6년) 2월에 왕이 “벼농사를 시작하라”고 명을 내린 것이 최초인데, 이것은 벼농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아닌 봄이 되었으니 올해의 벼농사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 시기는 벼농사가 일반화되어 왕에게도 이미 관심사가 되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의 벼농사는 기원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같은 벼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논이며, 논의 핵심 요건은 ‘물대기’였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은 논을 수전(水田)이라고 불렀다. 반면 우리 선조들은 수전이 아닌 답(畓)이라고 불렀다.

서기 43년, 고구려 대무신왕 26년의 삼국유사에는 “경작하지 않던 토지를 새로 경작하여 신답평(新沓坪)이라 하는데, 여기서 답은 속문(屬文)이다”라고 나와 있다. 이는 답이라는 한자가 중국의 정통 한자가 아니고 국내에서 만들어져 이때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벼농사로 우리 민족은 5000년 이상 쌀밥을 먹었으며, 벼농사가 시작될 무렵인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 시대에는 민무늬토기가 출토됐다. 우리 선조들은 이 민무늬토기에 음식을 저장하거나 재배한 쌀을 끓이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군조선 시대 사람들은 도정 기술이 없어서 벼를 대충 갈아 대형 토기에 끓인 다음 걸쭉한 죽 형태로 먹거나 시루에 쌀을 얹어 쪄서 먹었다. 현재도 동남아지역에서는 ‘탕취법’이라는 조리법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 이전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공동 식사의 풍습이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그 시기에는 빗살무늬토기나 민무늬토기 같은 대형 토기밖에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남부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중남미 등지의 산야에 흩어져 자생하는 ‘야생벼’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중요한 식량으로 이용하고 있는 ‘재배벼’의 조상이다.

재배벼는 전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각 지역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인간의 이용 목적에 알맞게 인위적으로 육종적인 수단을 통해 개량돼왔다. 따라서 재배벼는 그 지역환경과 이용 목적에 맞게 개선되기는 했지만, 원래 야생벼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은 상대적으로 잃게 됐다.

식물분류학적으로 벼 속(屬)에는 약 20개의 종(種)이 있는데, 이 중에서 재배화된 것은 아시아 재배종 ‘사티바종(Oyza sativa)’과 아프리카 재배종인 ‘글라베리마종(Oyza glaberrima)’ 두 종밖에 없다. 사티바종은 약 1만 년 이전 아시아에서 맨 처음 인간에 의해 재배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육대주 어디에서나 재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사티바종 재배벼는 아열대에서 열대와 온대지역으로 널리 전파되면서 여러 가지 생리·생태적 특성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방향으로 진화되면서 크게 세가지 아종(亞種)으로 분화됐다. 이들 아종은 각기 ‘자포니카(japonica)’ ‘인디카(indica)’ ‘자바니카(javanica)’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오래전부터 야생벼의 염색체 수는 24개인데 비해 중국에서는 24개의 두 배가 되는 48개인 것도 있다.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벼의 전래가 가장 빨랐던 것은 원난 → 양쯔강 → 화이허 → 산둥반도 → 한반도 한강 하류의 황해 횡단 루트가 아닐까 판단한다. 또 다른 경로는 양쯔강 하류 → 화이허 → 산둥반도 → 황해도 장산곳으로 전래되기도 한다.

1910년부터 1930년경까지 수집 정리해 보존하고 있는 재래종은 인디카에서 자포니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면서 쌀 품질 또한 좋아졌기 때문에 쌀을 먹는 사람은 쌀의 영혼과 힘을 받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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