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내비’ 찍고 월면차 드라이브?…사상 첫 GPS 수신 성공

2025-03-08

달 착륙선 블루 고스트 탑재 ‘LuGRE’ 가동

월면에서 역사상 첫 GPS 신호 수신 성공

지구 위성서 발신한 전파 증폭…36만㎞ 극복

특수 센서 쓰는 기존 기술보다 크게 간편

달 개척 기반 강화…NASA “역사 새로 썼다”

# “저 커다란 파란 구슬은 볼 때마다 경이롭군.”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떠 있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지구를 본 프루이트 대령(도널드 서덜랜드 분)은 이 한마디를 뱉은 뒤 침묵을 이어간다. 주행 중인 월면차에 동승한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 분)도 지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 없다. 두 사람은 월면에 있는 화성행 로켓 발사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때, 미확인 월면차 여러 대가 두 사람 근처로 몰려든다. 달 여행자의 금품을 노리는 우주 해적이다.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맥브라이드 소령이 탄 월면차는 해적 차량과 충돌하며 운석 충돌구 바닥으로 추락한다.

사방이 막히고 움푹 들어간 지형 탓에 운석 충돌구 내부는 빛이 들지 않는다. 전조등을 켜도 칠흑같이 어둡다. 그런데도 맥브라이드 소령은 길을 잃지 않고 로켓 발사장에 도착한다. 월면차 계기판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덕분이다. 미국 공상과학(SF)영화 <애드 아스트라> 속 얘기다.

차량 위치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을 쓰는 일은 지구에서는 일상이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 속 달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에서 너무 먼 달에서는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한 ‘글로벌 항법위성시스템(GNSS)’ 전파 신호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GNSS가 미국이 운영하는 GPS이다.

그런데 돌연 상황이 달라졌다. 달에서 내비게이션을 쓸 날이 갑자기 다가온 것이다. 월면에 안착한 한 민간 착륙선 때문이다.

착륙선 정체는 미국 우주기업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가 미 항공우주국(NASA) 재정 지원을 받아 제작한 ‘블루 고스트’다. 지난 2일(미국시간) 달 앞면의 ‘위난의 바다’에 안착했다. 동체에는 한국 전통 문학인 시조 11편을 포함해 달에 보관할 인류 문화유산, 그리고 고성능 탐사 장비 10개가 실렸다.

탐사 장비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달 적용 글로벌 항법위성 시스템 수신용 실험기기(LuGRE)’라는, 복잡한 이름의 장치다. 용도는 미국과 유럽이 각각 제공하는 위치 식별 시스템인 GPS와 갈릴레오 신호를 ‘포획’하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GPS나 갈릴레오를 쓰면 땅이나 공중에 있는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지구 상공 약 2만㎞에 띄운 인공위성이 발신한 전파가 언제 어디에서 수신되는지를 판별해서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결과다. 차량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 선박·비행기의 항법 장비도 GPS와 갈릴레오 덕에 돌아간다.

하지만 달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누릴 수 없었다. 지구 주변을 도는 GPS·갈릴레오용 인공위성이 달과 너무 멀어서다. 무려 36만㎞다. 서울과 부산 거리(약 400㎞)의 900배다.

NASA와 이탈리아 우주국은 이런 상황을 뛰어넘을 방법을 고안했다. 블루 고스트에 실은 LuGRE에 고성능 안테나와 신호 증폭기를 달았다. 달에 겨우 도착한 희미한 GPS·갈릴레오 신호를 낚아챈 뒤 강도를 폭발적으로 키우는 장비를 만든 것이다.

달 자동차·우주선 운행 탄력

LuGRE 가동 결과는 놀라웠다. NASA는 지난 4일 “지구 상공 인공위성에서 발신되는 GPS·갈릴레오 신호가 역사상 처음으로 월면에서 수신됐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오전 2시(한국시간 오후 4시)의 일이다.

이번 일은 달 개척 양상을 바꿀 중요한 기술적인 성취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달에서 월면차나 우주선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다. 지구에서 대형 안테나를 가동하고, 월면차나 우주선에 위치 신호를 방출하는 특수 센서를 달아야 한다. 사람이 일일이 조작하고 모니터링해야 하는 장비가 대거 동원되는 것이다. 시간과 유무형의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미래 달에서 기지 건설과 운영이 본격화하면 차량과 비행 물체가 다수 운영될 텐데 효율적인 교통 관리를 어렵게 만들 요소다. 자칫하면 달에서 교통 사고도 날 수 있다.

이번 LuGRE 가동 결과를 토대로 기술을 발전시키면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월면차와 우주선에 내비게이션을 달아 간단하게 위치·속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소재한 장비를 동원하거나 별도의 특수 센서를 사용하는 일 없이 우주비행사는 월면차나 우주선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에 전원만 넣으면 된다.

NASA는 “(월면뿐만 아니라) 지구와 달 사이 우주 공간에서도 GPS와 갈릴레오 신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며 “이번 실험을 통해 달 개척 역사를 새로 쓰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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