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경계 대상 1호 하워드 러트닉 美 상무장관
9·11 테러 때 회사 와해 위기 극복하고 갑절로 키운 월스트리트의 전설
포커페이스에 가려진 철저한 계산법 간파해 협상 전략 말려들지 말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무리한 관세 요구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미국의 막대한 국가 채무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약 1300조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2024년 한국 예산(657조원)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의 심각한 재정 상태는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베센트는 취임 이후 연일 ‘국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센트는 지난 3월 “우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이어 7월에는 자신을 “미국의 대표적인 국채 세일즈맨(I view myself as the United States leading bond salesman)”이라고 소개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미 국채와 미국의 천문학적 부채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 국채 금리가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국채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채무에 대한 이자도 관리 가능한 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여파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으로 고스란히 번졌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강경파’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있다. 언론 앞에선 환하게 웃는 신사 이미지의 러트닉은 무례할 정도로 한국 협상단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러트닉은 통상 관료사회의 관행과 격식을 과감히 깨뜨렸다. 이런 비정형적(非定型的) 협상 스타일은 한국 협상단을 당황하게 한다.
워싱턴포스트 “러트닉의 경제엔 논리가 없다” 직격
당초 러트닉은 베센트와 더불어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베센트가 재무장관에 낙점되자 러트이 밀린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러트닉은 베센트보다 강경한 것은 물론,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다도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협상단 입장에선 베센트의 카운터파트인 구윤철 경제부총리보다, 러트닉의 카운터파트인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부담이 큰 이유다.
러트닉의 ‘강경함’은 자국(미국)에 역으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지난 4월이 대표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해방의 날’을 맞아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러트닉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트럼프의 관세 발표 당시 4.15%였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월 7일부터 급등, 4.5%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뒤(4월 9일)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선언하며 한 발 물러섰다. 월가에서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 폭등(국채 금리 상승=국채 가격 하락)을 주요 원인으로 봤다.

이미 미국 내부에선 러트닉의 과격함이 경제적 손실로 귀결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5월 8일 “월가 출신의 억만장자이자 현 상무장관인 그는 끊임없이 언론에 등장하지만, 그가 하는 말 대부분은 경제학적으로 비논리적이고 상충된 주장들”이라며 러트닉을 비판했다.
WP는 러트닉이 4월 29일 〈CNBC〉에 출연해 “우리의 무역적자는 1조2000억 달러다.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그만큼 ‘여분의 물건’을 사고 있다는 뜻이다. 이걸(무역적자) 25% 줄이면, 미국 GDP 성장률이 1%포인트 상승한다. 3000억 달러가 늘면 GDP 성장률이 앞으로 계속 1%포인트씩 추가 상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 사실과 다르다고 짚었다.
WP는 “실제 (미국의) 무역적자는 9180억 달러이며, 상품 적자만 1조2000억 달러다. 서비스 부문은 흑자”라며 “미국이 수입을 줄이면, 수출뿐 아니라 외국의 미국 내 투자(국채 매입 등)도 감소한다. 수입품의 상당수는 미국 내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므로, 무역 제한은 오히려 제조업의 비용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트닉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무시한 채 단순 계산으로 결론을 내린다. GDP가 30조 달러라면, 무역적자 3000억 달러 감소가 GDP 성장률 1%포인트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식이다. 보복 관세, 환율 변동, 소비 패턴 변화 등으로 인해 그런 효과가 영구히 유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짚었다.
물론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러트닉이 무지해서 이렇게 발언하진 않았을 거다. 특히 러트닉은 상무장관에 오르기 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채권 거래·투자 회사인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였다. ‘4월 2일 무리수(국가별 상호관세)’가 상무장관으로서 돋보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홀로서기 청년, 월가의 제왕이 되기까지
우선 러트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봐야 한다. 러트닉은 1961년 7월 14일 뉴욕 롱아일랜드(Long Island)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솔로몬 러트닉은 퀸즈칼리지(Queens College) 교수였고, 어머니 제인은 화가 겸 조각가였다.
지금은 억만장자이지만, 성장기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던 1978년 어머니가 림프종으로 사망했고, 대학 시절 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실상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제리코 고등학교(Jericho High School)를 졸업한 이후 펜실베이니아 인근의 해버퍼드 칼리지(Haverford College)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금융계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3년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근무하며 이름을 알렸다. 업무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1991년 CEO에 올랐다. 러트닉은 미 국채 거래중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위기도 있었다. 캔터 피츠제럴드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회사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노스타워(North Tower) 101∼105층에 위치했다. 테러로 당시 회사에 있던 직원 658명이 사망했고, 희생자 중에는 러트닉의 친동생도 있었다.
러트닉은 회사 재건에 착수해 9·11 테러 직후 2000여 명이던 직원 수를 1만3000명까지 키웠다. 러트닉이 올해 초 상무장관으로 취임할 당시 캔터그룹은 1만30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소속된 글로벌 금융 회사가 됐다.
러트닉은 금융에서 성공 스토리를 쌓은 뒤 정치에도 관심을 보였다. 2024년 대선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올해 2월 18일 상원 인준 절차를 통과해 상무부 장관에 올랐다.
‘결례도 전략이다’…협상판 흔드는 러트닉의 화법
언론에 비친 러트닉의 모습은 ‘강경함’과 ‘비전통적 화술’로 요약된다. 특히 한국을 겨냥한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 7월 미·일 관세협상 타결 발표 직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합의문을 읽었을 때 한국 쪽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를 노려보는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상대 국가에 대한 결례도 불사하는 그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교적 화법과 전통적 관료시스템에 익숙한 한국 협상단 입장에선 상당히 낯선 장면이었다.
러트닉의 ‘흔들기’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일본은 합의했는데, 한국은 왜 하지 못했냐’는 논리로 한국을 압박한다. 합의문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셈인데, 한국으로선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 10월 2일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은 MOU에서 ‘비구속적(non-binding)’, ‘국내법 우선’ 등의 문구를 통해 방어가 된다고 본다”며 “다만 일본과 정치·경제적인 상황이 다른 우리로선 MOU 단계부터 바짝 정신 차리고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엔화)일뿐 아니라,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1조3200억 달러로, 4220억 달러인 한국의 3배에 달한다. 일본이 5500억 달러를 합의서 그대로 투자하더라도, 외환보유액의 40% 수준이다. 3500억 달러가 외환보유액의 82%를 차지하는 한국과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결국 한·미 관세협상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이 핵심이다. 특히 러트닉은 당초 우리 정부의 목표였던 최대 2000억 달러(대미 투자펀드)+1500억 달러(기업 대미 투자)를 ‘3500억 달러(대미 투자펀드)+1500억 달러(기업 대미 투자)’로 마음대로 책정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 10월 2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협상 교착점에 대해 “우리는 3500억 달러를 리미트(limit, 한도) 개념으로 보고 그중 많아야 5% 정도만 에쿼티(equity, 직접 지분 투자)이고 대부분이 론(loan, 대출)이나 개런티(guarantee, 보증)라고 이해했는데, 미국은 ‘캐시 플로(cash flow)’라고 표현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대부분 에쿼티로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핵심은 3500억 달러 중 에쿼티 비중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그리고 한·미 간 통화 스와프와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에 최종 합의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캐피털콜은 일부 자본을 조성해 투자를 집행하고 추가적인 자본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집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목표 투자금을 일시에 투자하는 방식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다. 현재 정부는 캐피털콜을 놓고 미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500억 달러’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한·미 관세협상에 정통한 인사는 〈월간중앙〉에 “(7월 31일) 대미 투자펀드가 2000억 달러 규모에서 합의됐으면 그나마 감당 가능했을 것”이라며 “3500억 달러로 책정된 이상 우리 입장에선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4200억 달러도 미 채권 등의 형태로 구성돼 있는데, 어떻게 미국에 현금으로 3500억 달러를 넘길 수 있겠는가”라며 “3500억 달러 에쿼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규모를 (3500억 달러 이하로)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관세협상의 열쇠는 美 내부 균열에 있다
결국 관세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러트닉과 직접 담판을 벌여야 한다. 베센트나 그리어가 아니라, 협상의 실질적 주도권은 러트닉 상무장관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러트닉이 현재처럼 강경 노선을 고수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권력 구도와 파워게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 월간지 〈더 뉴 리퍼블릭〉은 지난 4월 8일 “트럼프 행정부 내 인사들이 러트닉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강경한 관세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며 “아첨꾼으로 넘쳐나는 행정부 안에서도 트럼프에게 러트닉만큼 아부하는 인물은 없다”고 꼬집었다. 〈더 뉴 리퍼블릭〉에 따르면, 러트닉은 베센트와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장(NEC)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강경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도 지난 3월 11일 보도에서 “러트닉은 행정부 내에서 사실상 고립된 인물이 됐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정한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경제 혼란의 책임을 러트닉이 떠안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또 “백악관과 행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외부 측근들까지도 러트닉의 존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며 “그들은 러트닉이 대통령과 지나치게 밀착해 경제 현안을 조언하는 방식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불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미국 정가 분위기는 한국 협상단이 베센트와 해싯 등 반(反) 러트닉 진영을 적절히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러트닉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곧 미국의 경제위기’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