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고 입춘도 지났으니 영락없는 새해, 새봄이다. 요즘은 누구나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로 설 인사를 건네고는 하지만, 가족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손아랫사람이 세배하면 어르신이 덕담을 건네는 오랜 풍속이 있다. “새해에는 승진했다지.” “새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며?” 축하하는 과거형의 말에 더욱 강한 소원을 담아 복을 빌어주고는 했다. 입춘에 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춘첩 역시 복을 비는 덕담이 주를 이룬다. 잘 알려진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외에도 부귀와 장수,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글귀들이 내걸리곤 했다.
예로부터 개인의 행복은 나라의 안정 위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이라고 써서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고 집집마다 사람마다 풍족하길 바란 것이 그 때문이다. 진정한 나라의 평안은 통치자가 누구인지조차 잊는 것이라 했다. 실컷 먹고 배 두드리며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았다는 태곳적을 그리는 “천하태평춘(天下泰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야말로 봄맞이 글귀로 제격이다.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신년하례식을 하는 조직이나 단체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을 거슬러 먼지 쌓인 옛글을 읽는 삶을 택한 터, 이때라도 한번 스승과 제자, 동학들이 오래간만에 얼굴 마주하고 인사하는 자리를 다시 열기로 한 지 두 해째다. 젊은 연구자들의 최근 활동을 나눈 뒤 새해 인사와 함께 원로 선생님들의 따뜻하고 구수한 덕담이 이어졌다. 그중 한 분의 짤막한 말씀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새해에는 뉴스 안 봐도 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식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지점에서 온갖 요설들이 법의 이름으로 남발되고 있다. 보기조차 싫어지고 한편으론 두려워지기까지 해서 애써 외면하다가도 어느새 다시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라 전체가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러나 흉터가 깊게 남을 것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안개가 걷히고 사물이 드러나듯이 명백한 것은 다시 명백해지리라 믿는다. 입춘이 무색하게 한파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봄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