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 위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퍼진다. 푸른빛과 노란빛이 섞여 반짝이는 하얀 눈밭 위로, 낮게 드리운 그림자가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나무 울타리 위에는 작은 까치 한마리가 앉아 조용히 주변을 살핀다. 마치 평온한 정적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눈 덮인 울타리 위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한발짝이라도 가까이 가면 푸드득, 하고 날아가버릴 듯하다. 한겨울의 적막한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고요하고 섬세한 풍경이다.
이는 모네가 인상주의 기법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한 186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통적인 풍경화에서 벗어나, 빛과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내려는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다. 눈 쌓인 길과 언덕, 그림자 속에는 푸른빛과 보랏빛이 섞여 있고, 햇살이 비치는 부분에는 은은한 노란색과 분홍색이 배어 있다. 얼핏 단조로울 수도 있는 겨울 풍경이 오히려 다채로운 색감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그림자조차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이는 후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게 되는 ‘색채 그림자’ 기법의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자연이 빚어내는 색과 빛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고, 극적인 서사 없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상주의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눈으로 덮인 들판과 낮게 드리운 겨울 햇살, 나뭇가지 위에 소복이 쌓인 눈까지, 이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미묘한 움직임이 숨어 있다. 부드럽게 퍼지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 눈 속에 감춰진 따뜻한 색감, 작은 나무 울타리 위에 앉은 한마리의 까치.
어쩌면 우리도 이와 비슷한 모습은 아닐지.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찾으려 한다. 새로운 목표, 거창한 도전, 커다란 성취를 통해 새해를 특별하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변화는 때로 가장 조용한 순간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이루고,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변화를 만든다. 속도를 늦추고, 조용한 순간에 귀 기울이며, 보이지 않는 변화들을 발견하기. 새해를 맞이해,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깊이 살피는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