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베라, 봄의 시간

2025-02-04

2월을 봄으로 보지는 않는다. 보통 3~5월을 말한다. 하지만 찰떡같이 잘 맞는 24절기의 봄은 입춘 2월 3일이다. 입춘엔 늘 꽃샘추위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꽃샘을 넘어 엄동설한의 추위가 찾아왔다. 정원 공부를 하면서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입춘의 시기였다. 왜 아직 춥디추운 2월 초를 봄의 시작이라고 봤을까?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에서 일할 때, 2월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화분에 씨를 심고, 물을 본격적으로 주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씨앗은 처음부터 땅에 뿌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6~8주 정도 실내에서 싹을 틔워 키운 후 바깥에 옮겨 심는다. 밖에 나가는 시기가 4월 초순이니, 2월 초부터는 씨앗 작업을 해야 한다. 토마토·가지·배추 등 채소가 그렇고 감자도 마찬가지다. 감자 싹 틔우기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3월에서 4월 초 봄 감자를 심어야 하니, 입춘 즈음부터 따뜻한 곳으로 옮겨 싹을 틔운다.

과일나무에 중요한 것은 가지치기다. 열매를 잘 맺도록 매년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 적기가 겨울 추위 지나고 아직 땅이 풀리기 전인 2월이어서 시기가 짧다 보니 이즈음 과수원은 전화를 받기 어려워질 정도로 분주하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챌리는 ‘프리마베라’를 그렸다. 프리마베라는 ‘처음’과 ‘봄’의 합성어다. 이 그림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맨 오른쪽에 입에 잔뜩 바람을 문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아내 클로리스가 있다. 중앙엔 화려한 가운을 걸친 꽃의 여신 플로라와 함께 사랑의 신 비너스와 큐피드, 왼쪽에는 삶의 영광을 뜻하는 3명의 님프 그레이스와 태양의 신 머큐리가 등장한다. 그림 속 500송이의 꽃 가운데 다른 종이 190종이나 된다. ‘프리마베라’는 부드러운 서풍이 불어 꽃이 피니 우리 삶에 사랑과 영광이 가득해진다는 의미다. 아직 춥고 시려도 곧 꽃피는 봄이 온다. 조금만 더 견뎌보자.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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