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귀뚜라미가 침해했다더니... 경동나비엔, 특허권 2건 박탈 당했다

2024-11-04

양사, 보일러 관련 특허 4건 놓고 분쟁

경동나비엔, '18~'19년 특허 4건 등록

작년 12월, 귀뚜라미 상대 침해 금지 가처분

귀뚜라미, 올해 2월 특허무효심판 신청

올해 9월 특허심판원, 특허 중 2건 '전부 무효'

다른 1건, 청구항 19개 중 18개 '무효'

업계 "해당 특허 적용 제품 21년 출시... 소모적"

올해 9월 특허심판원이 보일러 열교환기 등에 관한 경동나비엔 등록 특허 2건을 무효로 판정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허심판원 무효 심결을 계기로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가 벌이고 있는 특허 분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허심판원이 무효로 판단한 특허 2건은 올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이 일부 인용한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사건의 대상 권리라는 점에서, 당해 가처분이 그 의미를 크게 잃었다는 시각도 있다.

난방용품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의 갈등은 지난해 12월 경동나비엔이 귀뚜라미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본격화됐다. 올해 2월 귀뚜라미도 특허심판원에 경동나비엔 등록 특허 4건에 대한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현재 상황은 양측의 '1승 1패'로 정리할 수 있다.

위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은 경동나비엔 측이, 특허심판원의 특허 무효 심판 사건은 귀뚜라미 측이 각각 유리한 결정을 받아 들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10월 30일, 경동나비엔이 제기한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경동나비엔은 2018~2019년 사이, 보일러 열교환기 등에 대한 특허 4건을 등록했다. 경동나비엔은 위 특허를 바탕으로 귀뚜라미가 자사 보유 권리를 침해했다며, 일부 제품의 판매 금지를 요구했다.

반면 특허심판원은 올해 9월 19일, 경동나비엔이 보유 중인 위 특허 4건 중 2건에 대해 '전부 무효', 다른 1건에 대해서는 청구항 19개 중 18개에 대해 '무효' 판단을 내렸다. 특허심판원 심결에서 살아남은 경동나비엔 보유 특허는 사실상 1건이다. 같은 특허를 두고 가처분 재판부와 특허심판원이 각각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가처분은 '잠정 처분'으로 본안소송의 1심 판결 전까지만 효력을 가진다. 가처분은 쟁점의 당부에 대한 판단에 앞서 '긴급성'을 먼저 살핀다. 신청인에게 ‘회복 불가능한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음이 인정된다면, 현상(現狀) 보존을 위한 인용 결정을 내리곤 한다. 가처분 인용 사실만으로는 본안소송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이와 달리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본안소송적 성격을 갖는다. 특허심판원은 특허청과 독립된 합의제 행정기관이자 이른바 ‘준사법기관’이다. 무엇보다 '전문성'에 있어 차별화된 존재감이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은 특허 무효 사건의 경우, 법원의 심리에 앞서 특허심판원을 반드시 경유토록 하는 '필요적 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특허 무효 사건에 있어 1심 법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경동나비엔 가처분 인용 사실보다 특허심판원 심결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측이 다투고 있는 특허는 보일러 열교환기 유닛 구조에 관한 것이 3개, 보일러 연소실 단열을 위한 공기층 배치 구조 관련이 1개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중견 특허로펌 대표변호사 A는 “문제가 된 특허 중 2건은 청구항 전체가, 다른 1건은 청구항 19개 중 18개가 기존 특허의 존재를 이유로 무효 판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A는 "특허심판원 심결에서 유효성을 인정받은 특허 1건의 경우, 출시된지 3~4년 이상된 제품에 적용된 기술"이라며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A는 에너지와 냉난방 공조 분야는 최근 들어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추세라면서 “출원 심사 당시 국내외 기존 특허의 존재를 모두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무효 심결 사건도 그에 비례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양측의 특허 분쟁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들이 소모적 분쟁을 지속하면 중소 협력업체들로 이뤄진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취재 중 만난 보일러 업계 종사자 B는 두 기업의 특허 소송을 “소모적”이라고 표현했다. B는 “경동나비엔이 등록한 4건 특허는 대부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이미 사용 중인 기술”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특허라는 것이 신규성과 진보성을 요건으로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들 특허는 처음부터 조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양측이 특허 소송을 벌이면 서로에게 득이 될게 없어 보인다”며 “소모적 분쟁보다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 해법을 찾는 게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 C는 “문제된 기술이 사용된 제품은 2021년 출시됐다”며 “출시된 지 몇 년 지난 제품에 사용된 기술인데 이제 와서 특허 침해를 문제 삼는 건 특허권 보호보다 다른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는 특허법원으로 장소를 옮겨 소송을 계속할 전망이다. 경동나비엔은 특허의 선점 사실을 강조하면서 귀뚜라미가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귀뚜라미는 문제의 특허가 등록된 시점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동나비엔이 위 특허를 등록한 시점은 2018~2019년이나 그보다 앞선 2013년, 정부 국책사업을 수행하며 해당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는 것이 귀뚜라미 측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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