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의 아버지 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의 롤모델이자 지혜로운 어른이었다. “우린 다 위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 연결돼 있어”, “진정한 왕은 뭘 베풀까를 생각하지” 등의 잠언은 심바뿐 아니라 30년전 철부지들을 성장기로 인도했다. 2019년 개봉한 실사영화 ‘라이온 킹’이 엇갈린 평가 속에도 전세계 16억5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건 무파사처럼 성숙해가는 심바 세대의 향수가 크게 작용했다.
18일 개봉한 ‘무파사: 라이온 킹’(감독 배리 젠킨스)은 무파사 연배가 된 심바 세대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아버지가 됐나’ 혹은 ‘리더는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프리퀄(앞선 시점 이야기) 실사영화다. 초원의 왕국 프라이드랜드를 이끄는 심바(도널드 글로버 목소리)가 그의 딸 키아라(블루 아이비 카터)에게 무파사(아론 피에르)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순환의 성장 서사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게 전편에서 권좌에 눈이 멀어 형 무파사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악당 스카(이번 영화에선 ‘타카’)가 ‘흑화’되는 과정이다. 친형제인 듯 보였지만 알고보니 어린시절 무파사가 대홍수에 부모와 헤어지고 떠돌이가 돼 타카의 무리로 흘러들어왔다. “언젠가 무파사가 배신할 것”이라며 내쫓으려는 아버지에 반기를 들고 “항상 형제를 원했다”면서 그를 받아들이도록 앞선 게 왕자 타카였다. 혈통에 따라 자신이 왕이 될 거라 믿었던 타카는, 뛰어난 자질의 무파사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기만과 술수의 꾐에 빠져든다.
대조적으로 무파사는 “왕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것”이라는 자수성가형 군주를 보여준다. 키로스(매즈 미켈슨)가 이끄는 난폭한 ‘아웃사이더’ 무리에 맞서 스스로 희생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 그를 추앙하게 한다. “네 덕분에 모두 하나로 묶였다. 각자 능력을 볼 수 있게 해줬다”는 대사는 무파사가 왕이 된 게 혈통이 아니라 능력 덕분임을 일러준다. 거대한 넓적바위 위에서 차례로 포효하는 무파사와 심바, 키아라는 각자 독립된 존재로서 서로를 잇는다.
앞서 실사영화 ‘라이온 킹’은 원작 애니를 그대로 옮기면서 다큐처럼 정교하게 야생을 묘사한 게 오히려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를 낳았다. 5년 만에 돌아온 이번 영화는 한층 진화한 CGI에 힘입어 실사와 애니의 중간 느낌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러낸다. 디즈니 산하 VFX 스튜디오 MPC가 아프리카를 포함한 3개 대륙을 탐구하고 4년에 걸친 작업으로 거대한 초원·폭포·설경을 실감나게 와이드스크린에 펼쳐냈다. 섬세한 표정 변화와 더불어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비인간이 일정 이상 인간을 닮으면 불쾌감을 느끼는 현상)’를 절묘하게 피한 것도 강점이다.
하지만 예정된 결말(무파사가 결국 왕이 됨)을 아는 입장에서 무파사와 타카의 기나긴 동행을 수려한 영상미로만 끌고가는 게 다소 지루하다. 전편의 감초 역할을 한 티몬(빌리 아이크너), 품바(세스 로건) 등이 화자로 등장할뿐, 대체할 만한 참신한 보조 캐릭터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암컷 사라비(티파니 분)를 둘러싼 구애 갈등이 형제 간 파국으로 치닫는 것도 식상한 전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사자들 생김새가 엇비슷해 캐릭터가 바로 구분되지 않는 것도 한계다.
‘모아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맡았던 린-마누엘 미란다 음악 감독이 ‘형제가 있길 바랐어’ ‘말해줘 너라고’ 등 귀에 꽂히는 선율을 들려준다. 다만 전편의 ‘하쿠나 마타타’ 같은 한방은 없다(이번 영화엔 패리디곡 ‘하쿠나 무파사’가 잠깐 등장한다).
2017년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배리 젠킨스 감독이 애니 30주년 기념작을 연출했다. 젠킨스 감독은 “무파사는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았고 특권층도 아니었다. 가족을 잃었지만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이를 밑거름 삼아 배움을 얻었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CGV 실관람평에선 “부모님이랑 봤던 추억+내 아이랑 보는 힐링”(ID 여야) “영상미에 비해 부실한 이야기”(블루돌돔) 등이 갈린다. 24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하얼빈’에 밀려 예매율 2위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