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1편에서 계속)- 사실 쇼펜하우어도 그랬지만, 형도 인생에서 많은 위기를 겪으셨잖아요. 그렇죠. 평탄하게 잘나가시다가도 어느 날 덜컹하고 수렁에 빠지시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칩거하시기도 하고.
조영남: 몇 번 그랬죠.
- 수많은 재산을 그림 값 물어주시느라 쓰고. 뜻하지 않게 삶의 그런 위기들이 있었는데 그런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그게 참 궁금하더라고요.
조영남: 일본 관련 책을 써서 한 2년 동안 유배당했어요. 근데 제가 2년 동안 유배당했지만 20년 이상 찬사를 받아왔잖아요. 근데 2년 유배당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안 되죠.
-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조영남: 60년을 이 나라에서 편하게 살았는데 6년 재판받은 걸 투덜대면 남자스럽지 않고.
- 그러니까 저는 뭐 그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찌 됐든 6년간의 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정을 받으셨는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을 드렸죠. 그랬는데 '치사하게 그런 거를 청구하냐' 이렇게 말씀하셨던 걸로….
조영남: 이슈가 되게 하지 말자. 그냥 조용히. 내가 6년 동안 돈은 못 벌었지만 그림 많이 그렸으니까. 그림 파는 걸로 어떻게 퉁 쳐보자. 이 나라가 저한테 참 좋은 나라예요.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지만 기가 막힌 나라예요. 그냥 미술을 좋아한 미술 애호가였던 일반 가수 하나를 6년 동안 국비를 들여서, 국세를 들여서 화가로 완전히 올려줬어요. 이 나라가 '너 화가 해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화가 노릇하는 거예요.
◆ 많은 선생들의 관심 덕분에 세상을 배웠다
- 그 좋은 나라에 사시면서 주변의 분 혹은 위에 선배 분들 중에서 영향을 줬거나 아니면 아 그분들 덕분에 내가 오늘날까지 잘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이 좀 있을까요?
조영남: 김동길 교수, 이어령 교수가 먼저 생각나요. 우리 시대가 굉장히 좋은 시대예요. 김수환 추기경님, 성공회 김성수 대주교, 강원룡, 김장환, 한경직 목사님. 그분들과 다 가깝게 지냈어요.
- 강원룡 목사님은 형을 아들처럼 생각하셨다고. 김장환 목사님은 제자처럼 생각하시고. 젊은 시절에 '한국 청년이 본 예수' 같은 책을 쓰시고, 종교에 심취하신 게 그런 분들 영향이 있었군요.
조영남: 김장환 목사님이 저를 목사 시키려고 신학대학교에 보냈죠.
- 지금의 조영남은 종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조영남: 제가 졸업하는 날 목사 안 될 놈 손들라고 해서 저 하나 손 들었어요. 목사를 안 하겠다고 한 거죠. 안 하니까 선생님이 묻더라고요. 넌 5년 동안 와서 공부했는데 왜 목사를 안 하냐고. 그래서 말했지. 저는 목사 할 체질이 아닙니다. 조용해졌어. 저는 설교하다가 저쪽에서 젊고 예쁜 여자가 들어오면 설교하는 거 다 잊어버리고, 저 여자가 누군가 생각에 빠져버릴 것 같다. 목사 체질이 아닙니다 하고 나왔죠.
-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하신 건 아니잖아요?
조영남: 그렇죠. 그거하고는 다르죠. 목사직을 포기한 거죠.
- 그럼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적인 신앙을 베이스로 갖고 계신가요?
조영남: 오늘 인터뷰한 게 결과가 형편없으면 시골 교회 하나 만들어서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어떤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기독교이고, 모태 신앙이죠.
- 조영남에 대해서 이런저런 사건 때마다 안티들이 많이 생겼단 말이에요.
조영남: 안티가 10명이라면 지지하는 사람도 10명 있어요.
- 네. 대중들을 상대로 한 엔터테이너들은 안티에 대해서 늘 신경을 쓰는데 선생님은 그 안티들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조영남: 내가 유명하니까 안티가 있는 거지. 내가 이름이 없거나 아무것도 안 하면 안티도 없어요. 안티가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걸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없으면 조영남이 아무것도 아니죠.
- 어찌 됐든 간에 그 안티들의 비판적인 시각을 보면 기본적으로 여자친구라는 게 애인을 여러 명 두는 걸로 오해를 하는 식이죠.
조영남: 스킨십도 하고 그런 관계를 상상해요. 이제 점점 아실 거예요. 내가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그게 아니라는 걸.
- 그리고 여전히 무명 화가를 고용해서 그 사람한테 그림 그리게 하고, 형님이 사인만 한 걸로 돼 있어요.
조영남: 다 그렇게 알아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해.
◆ 요즘 젊은 청년들이 총체적으로 우리보다 낫다
-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조영남: 중계로 다 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대한민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글을 쓰시는 작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조영남: 아주 탁월한 실력에 남다른 면이 있지요. 저는 박완서를 좋아하거든요. 박완서나 박경리 전 세대 소설가하고 달리 요즘 트렌드에 맞게 소설을 잘 쓰신 것 같아요.
- 형님은 시인 이상에 대한 평전도 쓰시고. 평전이라기보다는 해설서를 쓰셨죠?
조영남: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상을 좋아했는데. 왜 좋아했느냐 하면 그 소설 '날개', '봉별기' 수필 '권태' 이런 거는 쉽게 천하의 명문으로 잘 읽혀요. 그 소설만 보면 노벨문학상 타야 해요. 그런데 시는 전혀 알아먹지 못하게 이상해. 너무 난해해서. 모두들 국문학계에서 가장 관심 있게 공부하는 게 이상이에요. 그런데 이상의 시를 해설한 작가가 하나도 없어. 본격적으로 해석해서 책을 쓴 거죠. 내 머리에 신이 계신가 보다 할 정도로. 열몇 편 되는 시를 해석해놨죠.
- 그러니까 참 특이한 책을 내신 거예요. 제가 읽은 기억으로는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 상당 부분 이해를 갖고 쓰셨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난해한 시를 이해하실 경지에까지 가시려면 열심히 공부를 하셨을 텐데 이게 꽤 오랜 시간 걸쳐서.
조영남: 열심히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미세한 뇌경색 걸린 거죠. 이상 책 때문에 그랬어요.
- 젊은 친구들한테 특히 MZ들한테 얘기해주실 말이 있으신지?
조영남: 저는요. 젊음과 늙음 나누는 거 이거 참 굉장히 싫어합니다. 젊음하고 늙음하고 차이가 없어요. 늙는다는 건 본인이 의식하는 건데. 5살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커 왔는데. 그래서 나는 다섯 살 하고도 얘기해도 되고 100살 먹은 김형석 교수들하고 얘기할 수도 있고.
- 그냥 아들이나 아니면 딸한테 얘기하듯이 친구처럼 얘기하듯이 내가 살아보니까 이렇더라 얘기해 주세요.
조영남: 딸이 나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아요.
- 그래요? 어떤 면에서 잘 사는 것 같습니까?
조영남: 총체적인 면에서.
오광수: 하여튼 오늘 긴 시간 동안 너무 즐거운 얘기들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영남: 끝난 거예요? 이렇게 끝나요?
- 네.
조영남: 만세 한번 부를까요? 만세. 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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