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에 대해 가족끼리 의견이 다른데, 치과의사가 끼어들어도 될까요?

2024-12-29

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서울 번화가에 개업한 김 원장에게 어느 날 28세 여성 환자 이 씨가 찾아왔다. 막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 씨는 결혼을 앞두고 교정 치료를 받고자 한다. 의뢰인 상담에서 교정이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는 이 씨의 인식에 김 원장도 동의했으며, 장안모의 골격성 2급 부정교합이라 발치 교정을 하기로 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발음 때문에 설측 교정은 치료 계획에서 제외하였다. 다음번에 치료 결정 약속을 잡았다.

며칠 뒤 이 씨는 결혼 약속을 한 정 군,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내원하였다. 딱 봐도 비싼 옷과 장신구를 하고 온 어머니는 “너 충분히 예쁜데 이런 복잡한 치료를 해야 하니? 곧 결혼인데 빨리 해야 하지 않을까? 비용도 비용이고”라며 이 씨에게 핀잔을 주었다. 정 군은 별다른 의견이 없고, 그저 갈등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 씨는 교정 치료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예비시어머니 앞에서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 “예 어머님, 더 단순한 치료도 될 거예요….”

물론, 보철로 당장 전치부 정도만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환자의 안모 개선에 교정 치료가 도움이 될 것이고 예후도 만족스러우리라고 생각한다. 원체 이 씨가 원했던 것도 교정 아닌가. 그런데 김 원장,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끼어들 일이긴 한가?

위 사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아니 그건 가족 일인데 치과의사가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는 없지 않아?”라는 생각이 떠오르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치과의사가 관여하는 것이 윤리적인 결정입니다. 물론, “아, 어머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일단, 왜 치과의사가 개입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보지요.

이미 여러 번 이 칼럼을 통해 의료윤리의 중요 원칙 중 하나가 환자 자율성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윤리적으로 환자는 자신의 건강 관련 사안에 대해 스스로 가치와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하고, 법적으로 환자는 의료적 문제에 대한 결정 권한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이런 결정을 제한하는 요소가 여럿 있는데, 그중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외부의 압력이지요.

환자의 결정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외부인이 여럿 있습니다. 의료인도 거기에 속하고, 사회 또는 국가도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부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문화권에서 가장 큰 외부 압력 요인은 잘 아시는 것처럼 가족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개인의 중요한 결정은 전통적으로 가족과 함께, 사실은 가족의 의견으로 내려져 왔으니까요.

의료윤리가 만들어진 미국에선 이런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환자 견해에 가족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므로, 전적으로 환자 혼자서만 결정할 수 있도록 상황이나 방법을 제시할 것을 윤리나 심지어 법이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결정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미국적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서 나온 생각이고, 한국에선 꼭 그렇진 않지요. 가족이 개인의 결정에 개입하는 일은 흔하게 벌어지고, 그것은 “가족 사정”이니까 딱히 밖에서 참견할 일은 아닌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저희는 환자 자율성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가족이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환자 대신 “가족 자율성”, 아니면 조금 더 둥글려서 “공동체 자율성” 정도로 원칙을 삼아서 그에 맞게 행동하거나 법을 정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떠실까요. 연명의료 결정법을 알고 계시지요. 임종기 환자에게 연명의료가 주어지고 있을 때 이를 중단할 수 있는 절차로, 환자 본인의 의사가 우선하지만 환자가 이전에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면 가족의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합니다. 그럴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말기에서 임종기 사이에 있는 한 노인 환자분에 대하여 어떤 가족이 빨리 유산을 물려받으려고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고 해 보지요. 사실, 환자분은 그래도 가능하면 살 수 있는 만큼 살아야지, 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결정, 절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의 부적절한 개입과 의사결정의 왜곡이지요. 앗, 처음 보신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연명의료 결정이 더 중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의료적 결정 하나하나는 모두 중합니다. 치과적 결정이라고 사소한 게 절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치과 치료를 위한 결정도 가족의 부적절한 영향은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거예요. 꼭 미국처럼 환자가 전부 알아서 결정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가족의 관점 안에서 환자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환자 자율성”을 말할 때 요청되는 태도이자 실천입니다.

그렇다면, 치과의사로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가족을 붙들고 한 시간씩 상담해서 가족을 설득해야 할까요? 현실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일단 치과의원에서 그런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이런 논의를 진행해 본 경험이 없는 치과의사가 갑자기 좋은 상담자가 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치과의사가 끼어들면 환자나 가족 측에서 괜한 참견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지요.

따라서 이런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먼저 고려해 볼만한 것으로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데요. 막 가족의 압력에 휘둘려서 자기 뜻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환자에게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지요. 이미 검토했던 좋은 선택지를 같이 짚어서 환자에게 은근히 발언권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면, 아예 오늘은 치료 선택지를 검토하는 날이었다며 다음번에 환자분만 따로 와서 최종 결정을 하자고 안내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갑자기 이렇게 하면 당연히 서로 당황스러울 수 있지요. 그래서 이런 검토와 논의, 생각의 시간을 하나의 절차나 제도로 만들어서 치과의사가 제공할 수 있고, 필요한 결정 지원 도구를 제시하도록 하는 방식이 이전에 소개해 드린 “공유 의사결정”입니다. 공유 의사결정은 환자가 자신의 가치와 견해를 치료에 반영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라고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치료 결정을 내원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몇 번에 걸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일반적인 모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만큼,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우면서요.

이런 노력이 치과의사에게도 요구되는 일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제 치과의사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이런 분야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여전히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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