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시대의 두 번째 챕터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대규모언어모델(LLM)의 파라미터 개수와 사이즈에 열을 올렸지만 이제는 실질적으로 산업에서 AI가 어떤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두고 비영어권 이용자를 위한 AI 에이전트(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나브 미스트리 투플랫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AI 시대의 첫 챕터가 LLM 개발이었다면 두 번째 장은 그 모델을 실제 기업에 적용하는 것”이라며 “통신·헬스케어와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이 디지털을 건너뛰고 ‘AI화(AI-fication)’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체 개발한 LLM ‘수트라’로 사업을 시작한 투플랫폼도 올 초 AI 에이전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AI 에이전트 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하지만 미스트리 CEO는 좋은 AI 에이전트의 요소로 문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핵심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거나 재무·인사관리(HR) 시스템과 통합되는 ‘슈퍼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나날이 변모하는 만큼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플랫폼의 LLM 이름을 딴 ‘수트라 에이전트’의 차별화 요소는 중요 작업에서 사람이 개입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이다. 에이전트의 자동 실행이 아닌 권한을 가진 사람이 이를 승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물리적으로도 지역마다 구축형(온프레미스) 서버를 보유하고 투플랫폼의 자체 클라우드에서 이를 작동하도록 했다. 인도에서는 이미 3억 명이 넘는 인원이 수트라의 AI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인도 정부와 높은 보안 수준을 요구하는 계약도 따냈다. 빠른 확장성을 인정받아 2월에는 인도 지오 플랫폼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약 288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이 같은 속도에는 투플랫폼에는 독특한 ‘삼각편대’ 구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본사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연구 거점, 한국 지사는 제품 상용화, 인도 지사는 고객 확장을 담당한다. 시장의 변화도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투플랫폼은 올 초 앤스로픽에서 공개한 모델콘텍스트프로토콜(MCP) 표준을 곧바로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화제가 된 에이전트투에이전트(A2A) 프로토콜도 초기 단계부터 채택했다. 미스트리 CEO는 “지역별로 리더가 팀을 주도하면서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분산 리더십 구조’가 빠른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최고제품책임자(CPO)로서 제품의 설계와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는 미스트리 대표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뒤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2년부터 9년간 일하며 최연소 상무와 전무를 역임했다. 그는 삼성에서의 경험을 대해 “비즈니스 스쿨 이상이었다”며 “이전에는 엔지니어에 불과했지만 수억 명의 사람이 쓰는 제품을 만들고 제조·제품화와 내부 설득, 고객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든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함께 호흡을 맞추는 팀원 중 대다수가 몸을 담았던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이다. 그는 “삼성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혁신적인 조직이었다”며 “가상현실(VR) 기기와 폴더블폰을 최초로 시도했을 정도로 과감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 삼성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스트리 CEO의 목표는 투플랫폼이 10억 명의 AI 사용자를 연결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 10억 명의 사용자가 영어 기반으로 시작됐다면 그다음 10억 명은 아시아와 중동 등 비영어권에서 나올 것”이라며 “자체적으로 LLM을 구축할 수 없는 언어권의 국가들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현지화된 AI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관세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별 로컬리티(지역성)와 AI 주권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