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반도체(042700)가 22일 예정했던 기업설명회(IR)를 다음 달 중순 이후로 미뤘다. SK하이닉스(000660)와 TC본더 공급 문제로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IR을 진행할 경우 고객사나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이날 개최 예정이던 IR을 취소했다고 지난 18일 공시했다. 한미반도체의 한 관계자는 “1분기 실적 설명을 위해 마련한 자리지만 고객사인 SK하이닉스 관련 질문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와 관련된 내용은 밝힐 수 없어 5월 15일 확정 실적 발표 이후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한미반도체는 2017년부터 8년간 고대역폭메모리(HBM) 필수 제조 장비인 'TC 본더'(열압착장비)를 SK하이닉스에 독점 공급했다. TC본더는 여러 개 쌓아 올린 D램에 열과 압력을 가해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난달 SK하이닉스가 두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과 10대 안팎(420억원 규모)의 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양 사의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조치지만, 한미반도체로서는 고객사가 새로운 경쟁자를 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말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TC본더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같은 배경도 한미반도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한미반도체는 8년간 동결하던 기존 장비 가격을 약 25% 인상하고 그간 무료로 유지보수를 해 오던 고객서비스(CS)의 유료화 등을 요청하는 식으로 SK하이닉스에 불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SK하이닉스 경영진이 최근 인천 한미반도체 본사를 찾아 관계 회복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간 물밑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IR을 열 경우 양 사에 민감하거나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 공개될 수 있는 만큼 한미반도체가 급히 IR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