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 간 과학자
김병민 지음
현암사
누구나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컴퓨터공학자이자 화학공학자인 김병민 한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융합스쿨 겸임교수도 2023년 말 암 진단을 받은 순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견지했던 이성적, 객관적 세계가 크게 흔들렸을 테니 말이다. 그 혼란 가운데에서 그는 두려움에 잠식되는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인 '관찰'을 꺼냈다. 그는 환자복을 입은 채 병원이라는 시스템 속을 누비며 그곳에서 사용하는 치료 및 진단 약물과 기계, 그리고 그것들의 작동 원리를 하나씩 해부했다. 또 그것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거슬러 짚어갔다.
이 책의 저자 김병민은 의사가 아니다. 이 책은 투병의 고통을 호소하는 기록도 아니다. 그보다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프리즘 삼아 과학의 역사와 원리, 생명의 본질을 써내려간 지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자기공명영상(MRI) 장비의 소음 속에서 양자역학의 원리를, 항암 치료를 위한 방사선 앞에서 뢴트겐과 퀴리 부인의 헌신적인 삶을 떠올린다. 환자 몸을 뚫고 지나가는 X선과 전자기파는 볼 수 없던 것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수많은 과학자의 땀과 열정이 어린 역사적 산물임을 알려준다.
단순한 과학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그 뒤를 따른다. 저자의 성품이 원래 그럴 수 있고, 암 투병이 그런 성품을 더 강화했을 듯하다. (뒤늦게 알고 보니 오랜 기간 그의 소셜미디어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타임라인에서 엿보이는 성품 자체가 그런 듯하다.) 산소의 역설을 다룬 대목을 예로 들자면, 산소는 생명 유지에 필수지만 역설적으로 세포를 산화시키고 노화와 죽음을 불러온다. 저자는 이를 통해 암과 질병이 개인의 불운이나 형벌이 아니라 복잡한 다세포 생명체가 진화 과정에서 짊어지게 된 대가라고, 그래서 단세포 생명체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원자력 기술은 핵폭탄 등 무기로 사용될 때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진단 및 치료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역설 속에서 저자는 과학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그 칼자루를 쥐는 인간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과학은 인간의 유한함을 위로하는 가장 따뜻한 언어가 되고 온기를 띤다. 과학책이다 보니 중간중간 설명과 이해에 필요한 수학 공식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과학자니까'라는 선입견을 깨는 고운 문장 덕분에 잘 읽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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