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아무도 책임 안 지는 금융권

2025-08-24

최근 수년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옵티머스 사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부실 판매가 연이어 터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개인의 피땀 어린 자산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비극이 왜 이렇게 반복되는가. 금융 당국은 불완전판매 및 금융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정치권은 감독 기구 개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이는 흐르는 강물 속에서 칼을 찾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금융시스템 전반에 뿌리내린 책임 부재에 있다.

당장 지금의 금융 감독 체계는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맡고 있다. ‘심판이 선수와 한 팀’인 이해 상충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시장 안정이 우선되면 소비자 구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 같은 구조에서 책임감 있는 정책은 종종 후순위가 된다.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금융사 문제도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4% 급증한 14조 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15조 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런데도 은행들은 상품 판매 수수료에 눈이 멀어 불완전판매를 계속해왔다. 금융 당국의 제재와 언론의 질타에도 그때뿐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전제 아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손쉬운 추심 연장과 불법 추심으로 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도 적지 않다.

소비자들도 일정 부분 책임감이 부족하다. 2021년 만들어진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등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고 직접 행사 가능한 구제 수단을 마련했다. 그러나 ‘소비자는 스스로의 권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책무도 명확히 규정했다. 금융시장은 공급자와 소비자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건전성을 지킬 수 없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말처럼 금융회사가 위험을 성실히 고지했다면 소비자는 판단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권에 ‘책임’을 지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첫째, 당국은 금융사가 설명 의무 등 판매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게 하고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을 최고경영진(CEO)까지 묻게 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제공된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시장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로 금융 감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감독의 원칙을 ‘사후 적발’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해야 불완전판매나 금융사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으로 문제가 되는 거래의 패턴을 조기에 식별하고 잠재적 위험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집단 지성 활용이다. 국내 최대 사기 정보 공유 플랫폼은 피해자들의 자발적 제보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금융보안원의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은 금융권 전반의 이상거래를 찾아낸다. 이 같은 방안을 이용하면 또 다른 의미의 방어막을 구축할 수 있다.

호주의 금융 감독을 책임지는 헤인로열위원회는 2018년 “왜 소송하지 않는가”라며 금융권의 불법행위에 대해 무관용 소송 원칙을 천명했다. 한국도 금융권의 신뢰 회복과 책임지는 문화 확립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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