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중복 상장과 유상증자가 쏟아지면서 국내 상장된 발행주식 수가 역대 최대로 늘어났으나 주가지수는 물론이고 시가총액마저 후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주식 공급으로 주식 가치가 빠르게 희석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 등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국내 증시(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에 상장된 전체 발행주식 수는 1203억 6493만 4910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1193억 5495만 4374주 대비 0.85%(약 10억 주) 증가한 수치다. 상장 주식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전체 시가총액은 2477조 630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7월 11일(2782조 6310억 원) 대비 12.3% 줄었다. 발행주식만 늘어나고 있을 뿐 시장 체질은 개선되지 않는 셈이다.
과도한 주식 공급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증시는 주가가 오르면서 시가총액이나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 공급이 늘어나면서 시가총액만 늘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발행주식 수는 2014년 말 592억 2514만 주에서 이달 7일 1202억 8770만 주로 103% 증가해 2배가 됐다. 반면 당시 코스피지수(1915.59)와 코스닥지수(542.97)는 각각 2573.80, 722.81로 34.4%, 33.1%씩 오르는 데 그쳤다.

주식 공급 대부분은 유상증자, 신규 상장, 전환사채(CB)의 주식 전환 등을 통해 이뤄진다. 발행주식 수가 늘어날수록 수급에 영향을 주면서 주당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주식 수가 늘어난 만큼 기업 이익이 증가하지 않으면 자본 효율성도 하락하기 때문에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대다수 상장사는 주식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투자 등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차입금 상환이나 운영자금 등으로 쓰고 있다. CB 전환이나 액면 분할도 주식 수를 늘려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올 들어 발행주식 수가 가장 크게 늘어난 상장사는 이스트아시아홀딩스(2억 1072만 주)다. 사업 확장을 위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72억 원을 조달하면서 신주 1억 1072만 주를 발행한 데 이어 운영자금 55억 원을 조달하면서 신주 1억 주를 다시 발행했다. 한온시스템도 1억 4496만 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통해 6000억 원을 조달했다. 올해 신규 상장한 LG씨엔에스와 서울보증보험도 각각 9689만 주, 6982만 주를 늘리는 역할을 했다. 성안머티리얼즈는 CB 전환 등으로 7354만 주, 리노공업은 액면 분할로 6097만 주가 각각 증가했다.
그나마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 주주 환원 요구 목소리가 커지면서 감자나 액면 병합, 주식 소각 등을 통해 발행주식 수를 줄이는 움직임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발행주식 수는 0.9% 증가해 2014년 1~4월(0.1%)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2021년 3.6%, 2022년 1.0%, 2023년 1.2%, 2024년 1.8% 등으로 늘어나던 추세가 꺾이는 모습이다.
일례로 코스닥 상장사 오션인더블유는 올해 초 액면가를 500원에서 5000원으로 병합하면서 1억 5179만 주를 줄였다. 세종텔레콤·아센디오도 각각 감자를 통해 발행주식 수가 1억 주, 9321만 주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1500만 주), 삼성물산(-781만 주), 메리츠금융지주(-609만 주) 등 90개사는 주식을 소각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고 발행주식 수만 늘어나면 주당 가치가 희석돼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식 수를 적극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