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E가 들이닥치는 순간 기업 투자는 ice(얼음)가 된다!”
미국 자산운용사 피셔인베스트먼츠 켄 피셔 회장은 지난달 하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월가의 교장 선생님’으로 불릴 정도로 통찰력과 명성을 쌓은 인물. 그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활동을 ice(얼음)에 빗대 비판했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트럼프 집권(1월) 이후 벌어진 “일터 급습의 최신 사례(The latest in a long line of work place raids)”라고 묘사했다. ICE는 캘리포니아·유타·매사추세츠 등의 현장을 급습해 왔다.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연간 1000만 명 추방”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다. 이번 사태가 연행자 수에서 최대 규모다.
피셔 회장의 진단은 지난 5일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8월 고용 통계에서 확인된다. 새 일자리(비농업 취업자)가 전달보다 2만2000개밖에 늘지 않았다. 월가 예측치는 7만5000개 증가였다. 이에 앞서 5, 6월치도 목표보다 낮았다. 7월만 6000개 많았다.
미 전문가들은 인구 증가를 고려할 때 새 일자리가 월 20만 개 정도 창출돼야 실업률이 급증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 기준대로라면 최근의 저조한 일자리 추세로 인해 실업률이 급등하고 경기는 침체에 빠질 만하다.
그런데 8월 실업률은 4.32%에 그쳤다. 역대급으로 낮다. 게다가 8월 평균임금이 지난해 8월보다 3.7%나 올랐다. 경기 호황 시기라고 착각할 정도다.
왜 이런 혼란이 벌어질까.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변덕에 따라 관세율이 춤춘다. 그동안 ICE가 일터를 급습하는 일은 금기였는데 지금은 노골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그 바람에 경영자들이 투자(새 일자리 창출)를 사실상 중단하고, 현상 유지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의 사보타주(sabotage·태업)라는 것이다. 그 결과 일자리 창출은 둔화하는데, 해고는 늘지 않아 임금 상승률이 높게 유지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폴 크루그먼(경제학) 뉴욕시립대(CUNY) 교수는 SNS에 게재한 칼럼에서 “기묘한 트럼프 모멘트”라고 지적했다.
ICE의 공격적인 단속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임금이 호황 수준으로 오르는 바람에 미국인의 씀씀이는 탄탄하다. 그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기대만큼 진정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은 거세다. 16~17일(미국시간) 열리는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정도 인하된다는 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투자 최소화는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폴 도노번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기업이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정치 지형이 바뀔 때까지 잠복하는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Fed (The Federal Reserve)』 저자 로버트 헤철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Fed의 통화정책이 1970년대 아서 번스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번스는 1970~78년 Fed 의장 시절 백악관 주문을 고려해 변덕스러운 통화정책을 폈고,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악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