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 부는 ‘초저가 바람’…짠돌이 소비 때문?

2025-01-11

정말이지 지갑을 열기가 무섭습니다. 밥상을 차리기가 두려울 정도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을사년 새해에도 ‘요노(YONO·You Only Need One·하나면 충분하다)’ 트렌드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상품을 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골라 구입하는 ‘짠돌이’ 소비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고물가 장기화에 신음하기는 유통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들의 닫힌 지갑을 열기는 열어야 할 텐데 동맥경화처럼 꽉 막힌 내수경기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손님은 오지 않고 매장 물건이 팔리지 않자 유통업체들이 고육지책으로 ‘초저가’라는 칼을 빼들었습니다. 신선식품은 물론 생활용품까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경기침체를 살리기 위해 새해 벽두부터 세일에 세일을 더하는 할인 전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초저가 열풍을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는 편의점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는 것이죠. GS25는 자체브랜드(PB) 리얼프라이스를 통해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상품 대비 20~30% 저렴한 특가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계란, 고기, 두부, 콩나물, 우유, 라면, 조미김 등 편의점 전용 상품을 총 40여종이나 내놨는데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지난해 특가상품의 누적 매출이 4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였습니다. 최근에는 실속형 화장품까지 매장에 진열했지요. 선크림, 클렌징폼을 3000원에 판매했는데 조기 품절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죠. GS25는 올해는 기초부터 색조 화장품까지 가성비 라인업 상품을 크게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워놨습니다.

CU에서도 1000원 이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880원 육개장 라면, 990원 채소·스낵·딸기 및 초코우유 등이 대표적이지요. 지난달엔 개당 290원짜리 초저가 캡슐커피 ‘290 블렌드 캡슐커피’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CU는 올해는 990 하루견과 2종(블루, 핑크)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중량 25g의 견과류 한 봉지가 990원인데 일반 제품 대비 30% 저렴하다고 합니다.

이마트24는 아예 초특가 상품 프로젝트인 ‘상상의 끝’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첫 상품은 1900원짜리 김밥과 3600원짜리 비빔밥 2종인데 김밥은 다른 김밥보다 평균 45% 싸지만 햄과 맛살, 어묵, 우엉 등 8가지 재료를 풍부하게 넣었다고 합니다. 비빔밥 역시 동일 상품 대비 20%가량 저렴한데 한돈 불고기에 로메인, 당근채, 콩나물무침 등 7가지 고명을 올렸습니다. 이마트24는 올해 이런 초저가 상품을 20종 이상 추가로 선보인다고 합니다. 외식 가격이 오른 데다 식재료를 구입해 집밥을 해먹기도 버거워 간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대형마트들도 연초부터 일제히 ‘가격 파괴’에 나섰습니다. 특히 롯데마트·슈퍼는 새해 물가잡기 캠페인 ‘더 핫’을 통해 초저가 상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겠다는 방침입니다. 더 핫은 ‘이번주 핫프라이스’ ‘이달의 핫 PB’ ‘공구핫딜’ 등으로 진행되는데 정상가 대비 가격이 50% 싸다보니 행사마다 오픈런을 할 정도로 인기라고 합니다.

홈플러스는 더 강력해진 ‘2025 AI 물가안정 프로젝트’로 맞불을 놨습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상품을 최적가에 제안하는 ‘AI 가격혁명’을 통해 매 시기마다 인기 상품을 초저가로 판매해 고객들의 장바구니 가격 부담을 낮춘다는 계획이지요. 이마트도 2025년 새로운 마케팅 정책인 ‘고래잇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고객이 응(%)할 때까지, 세상을 고래잇(Great)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고래잇 페스타’ ‘고래잇템’ ‘응(%) 가격’ ‘e머니 리워드’ 등 4가지 행사로 진행되는데 고래잇 페스타는 랜더스데이, 쓱데이처럼 대규모로 연간 5회 이상 열겠다고 합니다.

놀랄 만한 일은 온라인몰도 초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온라인몰은 가격 경쟁력이 큰 무기이지요. 그런데 이보다 더 싸게 팔겠다는 겁니다. SSG닷컴은 올해 독자적으로 장보기 상품을 특가에 내놓는 ‘그레잇 위크’(Great Week)를 펼쳤는데요. 요일별로 과일, 육류, 간편식, 가공식품을 정상가 대비 반값에 판매하고 패션, 뷰티, 스포츠 등 인기 상품도 최대 60% 할인했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SSG닷컴은 앞으로 식품은 물론 패션·뷰티 등 라이프스타일까지 가계에 보탬이 되는 할인 행사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11번가의 특가 쇼핑코너 ‘10분 러시’는 단 10분 안에 1000만원 이상의 거래액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정상가 대비 30~35% 싸게 선보인 나이키 운동화와 저염 파지명란, 로더베르 샴푸 등은 일찌감치 품절 상태를 빚었다고 합니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유통업체들이 초저가를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규 고객 유치는 물론 단골 확보 등 매출 극대화를 노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초저가 상품을 구입하려면 매장을 방문하거나 클릭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다른 상품 추가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출 상승 효과가 확실하다고 합니다. 박리다매로 한꺼번에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도 효과적이죠.

일각에서는 혹시 초저가 출혈경쟁으로 산지나 제조업체들이 불이익을 입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통업체들은 채소, 과일, 육류 등 신선식품은 산지 직배송을 하고 있어 운송, 물류, 보관비 등을 절감해 판매가격을 낮췄다고 합니다. 산지나 제조업체들도 사전 계약과 대량 매입을 보장받은 만큼 극심한 불황기에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맞게 자체 브랜드 신제품을 내놓는 것도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는 데 보탬이 된다고 합니다.

저성장 기조 속에 물가는 치솟고 원·달러 환율까지 급등하는 요즘, 소비심리가 당장 살아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장을 볼 수 있고,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닫힌 지갑을 여는 데에 초저가 상품만큼 파괴력 있는 마케팅 전략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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