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인공지능(AI) 경쟁력은 미국·중국·싱가포르·영국·캐나다에 이어 6위로 높은 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인프라·운영환경·개발·정부전략 부문에서 경쟁력이 높게 나타난 반면, 인재·연구·창업생태계 부문에선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창업생태계가 상위 10개국 중 가장 낮다. AI 자체가 아닌 AI 기술의 산업 및 비즈니스에의 적용이 매우 취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과학기술혁신역량’과 닮아 있다.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세계 7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인구 1만명당 연구원수 4위, 연구·개발 투자 총액 4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연구·개발 예산 1위, 인구 100명당 유선 및 모바일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 4위 등 투입지수는 상당히 높다. 그러나 연구·개발 투자 대비 기술 수출액 비중 28위, 연구원 1인당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수 및 인용도 33위, 지적재산권 보호 정도 29위, 창업활동지수 23위 등 산출지수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는 한국이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2022년 기준 5.2%로 세계 2위지만 연구 성과는 세계 8위에 그친 것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우리나라 혁신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취약한 산학연계’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혁신생태계의 문제들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과 같아서 수면 아래의 거대한 뿌리에 접근하지 않은 채 세운 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기 쉽다. 학교 시스템과 산업 시스템의 단절 하에 이뤄지고 있는 국가 인재 양성 시스템과 인력생태계가 산업계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나타나는 구조적인 현상이어서 보다 근원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그런 차원에서 혁신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몇가지 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산학연이 좀더 밀접하게 연계돼 움직이는 순환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학연이 공동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 혁신이 무엇인지 발굴하고, 이에 적합한 기술을 생산·확산해야 한다. 산업 전 밸류체인을 포괄하는 협업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산학연이 동반 성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 상호 암묵지를 전달하고, 단순한 자금지원을 넘어 학교와 산업계가 함께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식의 협력 모델을 실현해야 한다.
둘째, 실사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론을 넘어 실제 사례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편성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응용 능력이 성장한다.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현장실습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산업체 경험을 가진 교원의 채용을 확대하는 동시에 실험·실습 장비도 보강해야 한다.
셋째, 직업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해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대학, 각종 직업훈련학교 등으로 구성된 직업교육 기관을 더욱 체계화시켜 직업교육 참여율 17%를 OECD 평균 37%(2020년 기준)에 근접하도록 해야 한다. 효과적인 산학연계를 위해서는 일-학습 병행 프로그램을 정규 학제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 모집이 어려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간에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역산업과 밀착된 분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에 산업을 좀더 집중 배치해야 할 것이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