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우리나라도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호라이즌 유럽은 140조원 규모 세계 최대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이며, 올해부터 준회원국으로 참여가 가능한 세부 분야(필러·Pillar)는 글로벌 문제 해결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러 2다.
필러 2에는 호라이즌 유럽 예산 절반 이상이 투입되며 보건의료, 디지털, 우주, 에너지, 모빌리티 분야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유럽과의 과학기술협력은 왜 필요할까.
우선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은 유럽과의 과학기술협력을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과거에도 특정 분야에서 유럽과 협력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대형 프로그램에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하고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전례 없다.
미국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면서 유럽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 유럽의 우수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유럽은 전체의 32%, 특허는 27%를 차지하고 있고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국적만 보더라도 노벨화학상은 전부, 노벨물리학상은 2015년을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최소 1명 이상 유럽 출신 연구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라이즌 유럽을 통해 국제공동연구가 활발해지면 우리나라 과학기술도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트럼프 2기 집권으로 더욱 악화된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유럽과 협력은 우리에게 유용한 외교적 레버리지로 의미가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 행보를 보면 미국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미래가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알려진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은 원자력이나 인공지능(AI), 양자 기술과 같은 첨단 분야 발전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다음달 15일 공식 발효를 막기 위해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지만, 이번에 취해지는 단기적인 조치 이외에도 향후 유사 상황을 대비해 국제협력 대상을 다변화하는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으로 현재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유럽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은 국내 연구개발(R&D) 시스템을 한층 개선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제3국으로 참여하던 작년까지와는 달리, 올해부터 필러 2에 지원하는 연구자들은 더 이상 국내 선정평가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아도 호라이즌 유럽 예산에서 직접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EU 정책과 규정에 맞춰 연구기획과 관리,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관리방식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내 R&D 시스템을 돌아보고 유럽 시스템의 장점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호라이즌 유럽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들이 상당한 만큼 정부는 연구자들이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제도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글로벌전략실장 mlee@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