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외교관 장 모네(Jean Monnet)에게는 꿈이 있었다.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서로 뿔뿔이 나뉘어 반목하던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장 모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는 끔찍한 전쟁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은 실현되어야 했다.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를 비롯해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귀를 기울였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수립한 파리조약을 시작으로 유럽은 차근차근 통합을 향해 나아갔다.

1957년 3월 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체결된 로마조약(사진)은 그 기획의 정점이었다.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총 7조로 구성된 조약을 체결하면서 유럽은 독자적인 헌법하에 입법·행정·사법 기구를 지닌 정치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이후 유럽공동체(EC)로 명칭을 바꾸었고, 2007년 리스본협약을 통해 유럽연합(EU)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U는 태생적으로 전쟁과 거리가 멀었다. ECSC는 무기의 재료와 연료의 생산·유통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EEC가 만들어질 때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함께 창설되어 원자력에너지의 연구·개발·유통을 관리했다. 새로운 패권국인 미국이 국제 안보와 질서를 책임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수립된 기획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유럽은 스스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U는 앞으로 4년 동안 최대 8000억 유로를 국방비에 투입하는 ‘대비 태세 2030 로드맵’을 발표했다. 독일도 앞장서서 군수산업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과연 EU가 경제공동체를 넘어 독자적인 안보공동체로서 설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때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