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이후 주요 성과인
복지국가·민주주의 질서는
미국 주도 세계 질서 덕에
가능했던 역사적 산물이다
만약 미국이 역할을 포기
기존의 세계 질서가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면
앞날을 기약하기 힘들다
시간은 1930년대로
되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자유무역과 금본위제가
그때 끝장이 나고
파시즘·뉴딜이란 신질서가
국내외적으로 자리 잡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였다
트럼프 이후의 세계 또한
다시 거대한 전환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트럼프 정권의 파천황적인 행보에 세계가 충격과 혼란에 휩싸여 있으며, 그 충격의 여파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미칠지도 아직 전혀 알 길이 없다.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다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미국이 형성해 온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자체가 변화를 맞게 됐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트럼프 본인의 거친 언사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기를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민주주의에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복지국가의 위기이며 둘째는 민주공화정의 위기이다.
먼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20세기 중반까지의 국제 정치 질서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모든 주권국가는 스스로의 군사적 무력으로 자국의 독립과 자율을 지켜내며, 그로 인해 생겨나는 국제적인 ‘세력균형’으로 평화와 안정이 유지된다는 것이 명시적 암묵적인 세계 질서의 조직 원리였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러한 고전적인 질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이에 전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미국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미국 또한 적극적으로 이 역할을 떠맡았고, 이에 지금까지 1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계 질서가 나타났다.
이러한 질서에 힘입어 나타난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가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엄청난 군사 예산을 지출해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역할을 맡은 덕에 다른 나라들은 이제 스스로의 군사력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자력구제’의 강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고, 재정 지출에서 군사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산업국에서 전후에 출현해 오늘날까지 하나의 표준적인 모델처럼 자리 잡은 복지국가는 이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복지 강화의 흐름은 비록 19세기 말에 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만약 그때처럼 모든 나라가 스스로의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필요가 존재했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지출을 강화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산업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십상인 계급 및 여러 사회적 집단 사이의 파괴적인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전후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의 미국은 시간을 거의 100년 전으로 되돌려 이러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해체 혹은 최소한 방기하려고 하고 있다. 얼마 전 유럽연합 각국에 큰 충격을 안겼던 밴스 부통령의 발언이 그 예였다. 세계적 군사 질서의 가장 중요한 축의 하나였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미국의 동맹 관계를 근본부터 흔들었던 그 사건 이후 유럽연합과 유럽 각국은 자체적인 군사력 강화를 하나의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다시 재정 운영의 원칙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군사 지출 확대가 지상명령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지난 몇십년간 하나의 규범처럼 자리 잡았던 균형재정의 원리를 계속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은 지금 개헌까지 불사해 가면서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던 재정준칙을 폐기하려 하고 있고, 유럽연합 또한 연합 전체 차원에서의 채권 발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복지국가·안정된 민주주의 요동
이는 다시 재정 지출에 있어서 복지 정책과 사회적 조정에 들어가는 몫의 축소라는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극심한 자산 및 소득의 불평등을 비롯해 젠더, 인종, 지역 등 여러 가지의 불평등으로 점철된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 거의 1세기 동안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 질서 유지를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국가의 재분배 기능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만약 군사 예산의 팽창으로 이러한 기능이 약화된다면, 그러지 않아도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가니’처럼 들끓고 있는 각종 사회적 갈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욱 절망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집단들은 노골적으로 극단주의적 선동 정치에 휩쓸리게 될 것이며, 가뜩이나 전 세계에 거세게 발호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은 더욱 큰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갈등의 격화로 전후에 확립된 종류의 민주주의 질서의 안정성이 계속 흔들리게 되는 일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지난 80년간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질서에서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하나로 결합한 민주공화국 정체를 기초로 한다. ‘다수의 통치’라는 민주주의를 분명히 정치의 조직 원리로 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명백한 법치 질서와 법의 통치라는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드는 국가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통한 폭넓은 지지의 동원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튼튼히 하고, 동시에 그러한 민주주의의 작동이 어디까지나 법으로 정해진 절차와 상식에 따라 이루어지게 해 고대 아테네 말기의 혼란스러운 ‘중우정치’나 대혼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사회의 평화 및 안정과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원리였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집단이 시전하고 있는 정치적 실천은 ‘다수의 지지를 얻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해도 정당하다’는 원리에 뚜렷이 기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확립되어 왔던 법적 상식적 질서를 노골적 적극적으로 적대시하고 파괴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며, (극)우파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경향도 아니다. ‘현상타파’를 외치며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단주의 세력은 자신들이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서 기존 질서를 마음껏 재구조화하고 심지어 파괴하려 들고 있다.
더 많은 극단주의 출현 가속화
멀리 갈 것이 없다. 작년 12월3일 이후 우리나라에 창궐하고 있는 극우 세력들의 주장을 들어보라. 선거로 선출된 윤석열 대통령은 일종의 ‘왕’으로서 모든 헌법적 절차를 무시할 자격이 있으며, 그것을 헌정 질서라는 틀로 한계 짓고 단죄하려는 탄핵 찬성 세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따라서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모조리 때려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건국 당시 헌법을 설계했던 이들이 그토록 고심해 마련했던 틀, 즉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결합된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치 체제가 전 세계적으로 근본적인 의문과 노골적인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그 선두에 그리고 극단에 서 있는 트럼프 정권의 행태와 그럼에도 다수의 미국인들이 그러한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 정치의 현실은 그러한 의문과 도전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것이며, 더 많은 극단주의 세력의 출현을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냉엄한 역사적 현실을 만나게 된다. 모든 진보주의자들이 20세기 이후의 중요한 성과라고 뽑아 마지않는 복지국가와 안정된 민주주의 질서가 사실은 모두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덕분에 가능했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인류 역사의 진보가 이루어 놓은 불퇴전의 확고한 성과물 같은 것이 아니라, 만약 미국이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로 떠맡아 왔던 역할을 포기해 기존의 세계 질서가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앞날을 기약하기 힘들어지는 어쩌면 하루살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관세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와 등등의 나라들이 새롭게 빚어낼 지정학적 질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점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오고 있었던 주춧돌과 기둥들이 하나씩 뽑히거나 흔들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간은 193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 유럽인들이 너무나 당연한 ‘자연적 질서’로 믿었던 자유무역과 금본위제가 끝장이 나고 듣도 보도 못한 파시즘과 뉴딜과 공산주의라는 신질서가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자리를 잡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였다. 트럼프 이후의 세계 또한 다시 그런 ‘거대한 전환’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