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을 공공의료에 투자한다면

2026-01-05

2026년에는 과거와는 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변화는 반드시 여러 부문에서 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인공지능(AI) 활용이 가져올 문명사적 전환과 빠른 고령화만큼, 우리 사회보장체계에도 상상력과 현실의 결합을 통한 변화가 꼭 필요하다. 지각변동의 시대에는 이전보다 든든한 사회보장제도가 시민의 삶을 지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령화 시대에는 사회보장의 큰 축인 의료 부문도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는 보편적인 건강권을 지향하는 것이니만큼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불과 몇년 전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질병을 예방하고 의료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배분하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깨달은 바 있다. 절대적으로 수가 부족한 한국 공공병원은, 보유한 자원을 넘어서는 200%의 역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공병원은 늘어나지 않았다. 산업 발전의 관점에서 의료를 말할지언정 공공의료 확충은 언급되지 않는다.

괜찮은 걸까?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평균 57%였다. 한국은 5.2%로 격차가 크다. 공적 건강보험이 없어 의료보장이 뒤떨어져 있다고 하는 미국도 그 비중이 22.5%이다. 병상 수로 봐도 한국은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9.5%에 불과하지만, OECD 평균은 71.6%에 달해 격차가 더 크다. 소아과 오픈런, 산부인과 없는 지역 등 의료접근성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나 로봇 같은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3월부터 노인을 비롯한 지역민에게 돌봄과 의료서비스를 연계시켜 제공한다고 하지만 지역사회통합돌봄은 공공의료기관이 촘촘하게 깔려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전체 의료비용을 통제하면서 모두에게 건강권을 보장하려면 공공의료 확대가 필수적이다.

공공의료를 대폭 늘리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일할 의사 양성은 물론이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는 정부의 빠른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 재정 투입이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지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역할을 연기금이 할 수 있다면 우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정부가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를 위한 특별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연기금이 구입한다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수십년에 걸쳐 분산시킬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대표적으로 사회보장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의 복지투자 비율은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거의 전부 금융 부문에 투자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아예 없는 줄 아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그 규모는 2025년 10월 말 기준 1427조7000억원에 달한다. 공적 연기금으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로 세계 3위이다. 즉 사회투자 여력이 있다. 기금 5%의 사회투자만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욱이 연기금 중 절반이 넘는 737조7000억원이 보험료가 아닌 투자로 발생한 몫이기에, 적어도 일부는 모두의 삶의 질을 위해 투자할 만하다.

국민연금기금 중 300조원 이상은 이미 국내 채권에 투자되고 있다. 이는 공공의료 인프라 투자로 인한 수익률 하락은 없거나 그 효과가 크지 않음을 뜻한다. 이미 채권투자는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공공의료의 배치, 운영, 인력, 재정은 모두 정부가 책임질 몫이다. 즉 연기금 사회투자는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더욱이 이를 통해 1차 의료체계가 튼튼해지고 의료 격차가 줄어들고 모두의 건강권이 증진된다면, 지역 균형발전을 돕는다면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새로운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응력도 강화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낯설지 않은 이 상상을 실현하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국가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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