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프로야구 전성시대다. 이미 지난 22일 올 시즌 누적 관중 200만 명을 돌파했다. 44년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페이스다. 이 추세라면 지난해 1000만 명 시대를 처음 연 데 이어 1200만 명도 넘어설 기세다. 기존의 4050 중장년층에 2030세대와 가족 단위 방문객이 신주류로 떠오르면서 평일에도 표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흥행은 특히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가 주도하고 있다. LG는 개막 후 줄곧 선두를 질주하며 8경기 연속 매진 등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한화도 초반 부진을 딛고 치열한 2위 다툼에 가세하며 2018년 이후 무려 7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꾸고 있다.
느림의 미학 증명한 임찬규·류현진
조금 더뎌도 삶의 길은 잃지 말아야
돌풍의 바탕은 무엇보다 탄탄한 선발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임찬규와 류현진이 자리 잡고 있다. 주목할 건 둘 다 ‘속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최근 젊은 투수들을 중심으로 시속 150㎞가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려대는 가운데서도 140㎞대 초중반의 스피드로 당당히 살아남았다. 실제로 올 시즌 임찬규는 직구 평균 구속이 140.6㎞에 불과하지만 데뷔 15년 차에 생애 첫 완봉승까지 거두는 등 벌써 4승을 챙기며 다승 2위에 올랐다. 류현진도 “내가 우리 팀 평균 구속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젊은 파이어볼러들을 이끄는 맏형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사실 둘의 공통점은 원래 강속구 투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투수에겐 치명적인 팔꿈치 수술 후 구속이 줄자 고심 끝에 자로 잰 듯한 제구력과 타자의 허를 찌르는 두뇌 피칭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임찬규는 “구속을 잃은 뒤 한참을 방황하던 중 속도보다 우선인 게 뭔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구속이 아무리 빨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던질 수 없으면 결코 타자를 이길 수 없다는 야구의 기본 원리를 뒤늦게 깨우쳤다는 얘기였다. 류현진도 2022년 세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칼제구로 승부수를 띄우면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느림의 미학’을 몸소 증명한 이들의 생존과 성공은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재앙을 의미하는 ‘disaster’는 사라진다는 뜻의 ‘dis’와 별을 일컫는 ‘aster’의 합성어다. 나침반이 나오기 전에는 항해할 때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는데, 구름이 끼거나 폭풍우가 치면 별이 사라져 방향을 잃게 되면서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는 데서 유래된 단어다. 삶이 방향을 잃으면 그 자체가 재앙인 것도 같은 이치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의미가 없고, 오히려 빨리 달릴수록 목표와는 계속 멀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의 격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실 12·3 계엄도 타협과 소통하려는 노력 없이 속도에만 매몰돼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과속 질주하려다 보니 전혀 엉뚱한 곳으로 치닫고 만 것 아니겠는가. 헌법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인용한 탄핵심판 결정문에도 조목조목 적시돼 있듯, 조금은 더디더라도 최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며 한발 한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임을 새삼 일깨워준 사례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급속한 경제성장과 위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생존과 성공에만 집착하게 된 게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하지만 이런 출세지상주의가 과연 행복이란 최종 목표와도 같은 방향성을 유지해 왔을까. 행복하기 위해 지금의 힘든 현실을 감내한다면서도 정작 행복과는 너무 멀어져 버린 건,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곧 신록이 우거지는 5월. 위만 바라보던 시선을 잠시 옆으로 돌려 일상의 삶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껴볼 때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듯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도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