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백서로 돌아본 ‘K방역’, 팬데믹 또 오면 K방역 작동할까

2025-01-23

2020년 1월20일 국내에 상륙한 코로나19는 5년만에 신종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이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풍토병(엔데믹)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팬데믹 기간(2020년 1월20일~2023년 8월30일) 동안 코로나19로 한국에서 약 3457만명이 확진됐고, 3만5605명이 사망했다. 예고없이 닥칠 새로운 팬데믹에 대비해기 위해서라도 코로나19 대응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개선된 방역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코로나19 백서를 만들어 코로나 대응에 대한 평가작업을 하고 있다. 23일 경향신문이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읭원실을 통해 입수한 코로나19 백서 1·2권을 보면, 전문가들은 “빠른 검사와 추적, 격리를 내세웠던 K방역은 억제가 가능했던 코로나 유행 전반부에만 제대로 작동했으며, 결국 공공보건의료체계 및 일차의료체계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평가했다.

백서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보건복지부)가 제작하고 있으며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주축으로 보건의료 분야 연구원들이 국내외 연구결과를 검토하고, 방역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담당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방역·의료대응·정부조직체계(거버넌스)·돌봄 등 6개 분야에 걸쳐 코로나19 대응 전반을 평가했다.

‘K방역’은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대응을 의미하는 단어로, ‘3T’를 핵심으로 한다. 3T는 빠른 검사와 확진(Test)→역학·추적(Trace)→격리·치료(Treat)로 이어지는 방역 모델이다. 이같은 3T 전략이 초기부터 빠르게 세워진 것은 한국이 2015년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감염병 관리를 위한 법과 제도를 상당 부분 개선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직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차관급 기관으로 승격됐고, 방역 조치를 질병관리본부가 총괄할 수 있도록 권한이 강화됐다. 이같은 조직 개편이 코로나19 초기부터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빠른 진단검사 역시 메르스 때 경험으로 인해 가능했다. 백서는 “기업은 신종플루와 메르스 때의 경험과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 등을 바탕으로 개발 역량을 갖추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긴급사용 승인제도를 도입하여 신종 감염병의 출현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서술한다. “대비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신속하게 민관 공조체계를 가동”해 대규모 검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하지만 ‘K방역’은 유행 전반부에만 작동했다. 오미크론 유행 직전인 2021년 11월1일 정부는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공존) ‘단계적 일상 회복’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했다. 이 시기에는 2년 가까이 반복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줄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시위를 하며 방역 정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동량 조사 수치 등을 보면 거리두기 단계를 높여도 이동량이 그에 맞춰 줄지 않는 등 억제 위주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도도 극에 달한 상태였다.

더 이상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광범위한 전파력을 가진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유행하자 코로나19 사망자가 폭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체 사망의 90% 이상이 오미크론 유행 시기에 발생했다. 초과사망률(정상적인 조건에서 예상되는 수준을 초과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은 2022년 전까지 한국이 다른 국가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오미크론 유행 시점부터는 높은 수준으로 지속됐다.

백서에 실린 연구결과들은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3T를 중심으로 한 억제 전략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예견됐으나 제때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전환되지 못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광범위한 유행 시에 한정된 의료자원과 인력을 고위험군, 만성질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자 관리, 병상 등의 의료대응체계를 개편하는 작업이 늦어진 것이 오미크론 유행 대응 실패를 낳았다.

재난은 불평등하다. 백서는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말하기 위해 ‘초과사망’ 수치에 주목한다.

초과사망은 감염병 등 큰 위기가 없는 평시 수준을 초과해 발생한 사망을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대부분 국가에서 초과사망이 발생했다. 초과사망에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사망 외에도 다양한 간접적 원인으로 인한 사망이 포함된다. 의료접근이 제한돼 지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거나, 자가격리 시 가정폭력에 노출돼 사망에 이른 경우 등이다.

통계청 데이터에 따르면 월별 초과사망은 2021년 말부터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여 오미크론이 유행한 2022년 3월과 4월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월말 기준으로 월 초과사망은 약 4500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는데, 이중 절반 가량(48.36%)이 코로나19가 직접 원인이 아닌 간접 원인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초과사망은 모든 성별, 연령 등 집단에 따라 다르게 증가했다. 이 시기 고령층에서 초과사망이 급증했고, 여성 초과사망은 정점을 기록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에 많은 의료자원이 쓰이는 동안 만성질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다면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백서는 “건강한 일반 사회 구성원에 초점을 둔 방역 정책 이외에 취약한 기존 환자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정책 시행 결과로 인한 미충족의료 및 의료 역량 제한이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수 있으며 추후 사망 원인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지난해 6월 전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백서는 “코로나19를 개혁의 모멘텀으로 삼아 오래된 문제들의 개선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다음의 공중보건 위기에도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공보건의료체계의 역량강화와 일차의료체계의 개혁”이라고 짚었다.

공공병원 없이 코로나19 대응은 불가능했다. 공공병원은 유행 초기부터 감염병전담병원으로 빠르게 전환해 일상진료를 멈추고, 코로나19 환자에게 대부분의 병상을 내놨다. 2020년 코로나19 전체 확보 및 사용 병상의 90%를 공공병원이 차지했다. 병상 부족이 가장 심각했던 4차 유행 시기(2021년 7월~2022년 2월)에도 60% 가까운 병상이 공공병원에서 사용됐다. 전체 병상 숫자에서 공공병원 병상 비중이 10% 남짓인 것을 고려하면, 공공병원의 기여는 더욱 두드러진다.

백서는 감염병 대응 위기의 핵심 ‘정책수단’으로서 “공공병원의 양적 확대와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공공병원은 단순히 병상만 제공하지 않는다. 감염병 위기가 발생하면 정부와 연계해 감염병 정책을 세우는 참모 역할을 한다. 정부 방역정책에 따른 자원의 동원과 배분은 민간병원에 비해 공공병원에서 훨씬 신속하고 협조적으로 이뤄진다.

백서는 코로나19 시기 ‘동네의원’인 일차의료기관들의 참여가 너무 늦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경증감염자들의 치료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주로 담당하는 등 초기 코로나19 확진자 관리는 대형병원에게 집중됐다. 일차의료기관은 2021년 10월 비대면 재택진료를 시작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장 방역 담당자들과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일차의료 기관의 참여가 지연된 이유로 동네의원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점을 들었다. 한 전문가는 “(감염병은) 종식될 수가 없는데 종식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면서 정부가 단기간에 병원급 중심으로 대응하는 메르스 대응 모델을 고집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미래 감염병 위기 발생 시에는 일차의료기관의 의사가 환자와 1차 접촉을 하는 게이트키퍼가 돼 환자를 판단해 입원 여부를 결정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병상배정이 되는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백서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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