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금시초문(今始初聞)

2025-05-08

“배고파 지어 놓은 밥에 뉘도 많고 돌도 많다 / 뉘 많고 돌 많기는 임이 안 계신 탓이로다 / 그 밥에 어떤 돌이 들었더냐 / 초벌로 새문안에 거지바위 문턱바위 둥글바위 너럭바위 치마바위 감투바위 뱀바위 구렁바위 독사바위 행금바위 중바위 (중략) / 서강의 농바위와 같은 돌멩이가 하얀 흰밥에 청태콩 많이 까 두른 듯이 드문 듬성이 박혔더라. 그 밥을 건목을 치고(대충 먹고) 이를 쑤시고 자세히 보니 연주문 돌기둥 한 쌍이 금니 박히듯 박혔더라.”

휘모리잡가 ‘바위타령’의 한 구절이다. 경기민요 소리꾼인 이희문이 ‘밥에 섞인 돌을 골라내며 부르는 곡’이라며 부른 이 노래를 듣자마자 웃음이 쏟아졌다. 아무리 커도 손톱 크기만 할 돌멩이에 서울·경기도, 황해도, 평안도의 온갖 유명 바위 80개 이름을 줄줄이 붙여 부르다 못해 이빨에 낀 돌까지 서울 독립문 앞에 있던 ‘영은문’ 돌기둥에 빗댄 천연덕스러움은 ‘금시초문’을 넘어 ‘황당무계’ 수준이었다.

‘바위타령’이 세상에 등장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중반이다. 이 무렵은 1차 세계대전(1914∼18년) 시기이자 ‘수출’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의 쌀 수탈이 본격화한 시기다. 조리로 열심히 쌀을 일어내도 와드득 돌이 씹히는 쌀을 먹어야 했던 민초들의 삶과 나라 잃은 슬픔까지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이 노래가 나온 지 벌써 110년이 더 지났다. 이제 한국에서는 미곡종합처리장(RPC) 덕분에 쌀에서 돌이 나오지 않고, 쌀 생산 감축이 농업계의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쌀 부족 현상이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레이와 쌀 소동’의 현 상황을 실감했다.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 입국장 건물 기둥에 ‘쌀을 수입하시는 분께’라는 제목의 한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해외에서 쌀을 수입할 경우 해당 국가에서 검역필증을 받아야 하고, 일본에 돌아와 신분증 제시와 간단한 검사를 거치면 1년에 1인당 100㎏까지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글로 친절하게 안내문까지 붙여두다니 ‘금시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덧붙여 구경 삼아 찾아간 간다(神田)의 소형 슈퍼도 쌀 매대가 듬성했다.

급기야 귀국 다음날인 4월21일, 한국에 돌아와 접한 소식은 더 놀라웠다. 한국 농협 쌀 2t이 일본에 공식 수출됐고, 반응이 좋아 추가 수출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화제였다. ‘35년 만에 최대 물량 수출’이라는 소식에 뉴스 댓글과 유머게시판에는 ‘한국쌀 품질 입증’부터 ‘한일전 우승’ 등등 댓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속사정이 궁금해 번역기를 돌려 일본 뉴스를 살펴봤다. 이른바 ‘쌀 21만t 증발설’에 대해 일본 농업계는 ‘생산 감축이 가장 큰 원인’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1970∼2018년까지 50년 가까이 지속된 ‘감반(減反)정책’으로 쌀 생산기반이 줄어든 데다 현재까지도 작목 전환으로 쌀 감산을 유도해온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작목 전환을 통한 밥쌀용 벼 생산도 쉽지 않았고,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비축미 방출 물량이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닿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외 정세와 기후변화 등으로 모든 상황이 예측 불허, 금시초문인 세상이다. 쌀 소비 침체와 생산과잉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도 일본과 같은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하기만도 어렵다. 이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식량안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쌀 과잉을 막되 안정 공급과 수출처 확대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류수연 온라인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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