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역사문화의 근간에는 ‘인(仁·Discipline), 의(義·Courage), 예(禮·Inclusion), 지(智·Wisdom), 신(信·Honor)’과 풍류라는 고유의 정신문화인 선비 사상의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선비문화가 면면히 흘러왔기에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K컬처 등 한류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재미동포 1.5세대로 고국의 역사문화를 서구권에 알리는 데 앞장서는 강형원(62) 포토저널리스트는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팝·영화·드라마·푸드 등 한류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갖고 포용적인 문화의 힘을 담고 있다”며 “바로 그 원류를 따라가면 한국인의 정신문화인 선비 사상으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13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20년 귀국해 역사문화 현장을 발로 뛰며 사진으로 기록해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그는 UCLA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와 AP통신·로이터통신에서 30여 년 근무하는 동안 한국 이름을 고수했으며 LA 폭동(1992년)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스캔들(1998년) 보도사진으로 각각 퓰리처상을 받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6개월여간 사진 에디터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동안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 ‘선비의 나라, 한국-성인군자의 길’ 등의 책을 펴낸 그는 “미국에서 만난 한국 지식인들은 우리 역사문화를 몰라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해 초라하게 보였다”며 미국에 가족을 두고 고국으로 돌아온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카메라 앵글을 맞춰온 곳은 고인돌, 반구대 암각화,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궁궐·왕릉, 전통 장례, 삽살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백두산, 제주 용암동굴, 고성 앞바다 철조망 등 국토 구석구석을 다녔고 프랑스 파리 올림픽 한국관, 미 LA 세종학당,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우리 역사문화를 소개했다.

특히 강 포토저널리스트는 한국 교육의 고정관념이나 일제 문화의 잔재에 물들지 않은 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취재하며 스토리텔링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단어가 있는 한글에 꽂혀 1446년 출제된 훈민정음에 관한 문제, 정조의 한글 편지, 18세기 사대부들의 한글 조사에 주목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신라 화랑의 성불 모습으로 표현하고 백제 금동대향로의 코끼리 탄 사람과 4000년 전 제주도 해안가의 코끼리 발자국을 조명했다. 또한 청동 잔무늬 거울의 첨단 금속 기술과 세계 최초 철갑선인 거북선의 의미에 천착하고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 소가 부위별로 표시된 것을 세심하게 포착했다. 서양의 인쇄 혁명보다 500년 이상 앞선 9세기 목판인쇄, 13세기 세계 최초 금속활자, 1577년 세계 최초 상업일간지 신문 ‘조보’에 주목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고인돌, 유럽보다 1000여 년 앞서 기원전 2세기께부터 사용된 등자, 신라에서 쓴 로마시대 유리그릇, 시베리아 호랑이와 DNA가 같은 한국 범을 조명했다. 그는 “훈민정음을 복원하면 어떤 언어도 한글로 다 표기할 수 있는 등 소중한 역사문화가 너무나 많다”며 “많은 한국인들은 20세기를 거치며 자신들의 역사문화를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하며 등한시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5년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20만 ㎞ 이상 달리면서 찍은 사진만 수만 장에 달한다. 그 행간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문화의 원류이자 뿌리가 바로 선비 정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강 포토저널리스트는 “방대한 역사문화를 기록하면서 선비문화가 우리의 정체성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한국인의 도덕 생태계인 선비문화는 21세기 한류의 뿌리”라고 했다.
“선비 정신의 요체는 인·의·예·지를 갖추면 신뢰가 생긴다는 것인데요. 인은 도덕을 바탕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측은지심, 의는 목숨을 건 상소·의병·독립운동 같은 의로운 사고와 행동, 예는 천지인 사상에 입각해 포용하고 소통하는 것, 지는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를 수용해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죠. 이 같은 선비 정신이 녹아들어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으며 한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는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을 상품화해 세계에 각인시켰는데 우리도 한류를 지속시키면서 세계인으로서 활개를 치려면 선비 정신과 자존감,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선보인 사인검(四寅劍)의 경우 왕이 선비에게 하사했던 검으로 의와 신을 상징한다며 선비 정신의 덕목은 보편적 가치라고 했다.

그는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한일 역사문화를 발표했을 때 알 파누 총장과 교수들이 조지아주 현대차 메타플랜트 건설 현장의 대규모 체포 사건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다만 한국 기업에서도 선비 정신에 입각해 지역 주민들을 미리 살펴 우리 팀으로 만들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 저를 ‘국뽕’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나 결코 한국 문화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서양인들이 한국 역사문화에 너무 무지해 자비로 현장을 취재하면서 인공지능(AI ) 시대에 필요한 양질의 한국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생각해달라”며 활짝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