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공습과 이란의 보복으로 중동 지역에 전운이 드리운 가운데, 이란 측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 스스로 입을 경제적 타격 등을 들어 ‘전면 봉쇄’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지만, 유가 급등세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유가가 급격히 오르면 한국 경제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가상승, 무역수지 악화 등의 악재가 연이어 닥친다. 석유화학 등 관련 업계는 국제유가 추이와 이란 측 대응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는 15일 이란 국영매체 ‘IRINN’을 인용해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해당 보도는 이란 의회의 안보위원회 소속 에스마일 코사리 의원 발언을 토대로 한 것으로, 아직 이란 측이 해협 봉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다. 전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 LNG의 무역량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가장 좁은 지점은 폭 34㎞지만 양방향 통항로의 완충지대 등을 감안하면 대형유조선 등이 통과할 수 있는 항로는 약 3.2㎞로 매우 협소하다. 그만큼 봉쇄나 공격이 쉽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군사적 긴장이 커지는 동시에 전세계에 에너지 공급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70% 수준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최악의 경우 원유 공급이 차단되면 당분간은 비축유로 버티겠지만 그마저도 어려울 경우 정유·석유화학 등의 산업이 마비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발 가능성과 이란 경제가 입을 충격을 들어 해협이 전면 봉쇄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에너지 전문 컨설팅업체인 ‘워싱턴 아이비 어드바이저스’의 창립자 엘렌 월드는 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해협 봉쇄시) 중국이 가장 먼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 흐름에 차질이 생기길 바라지 않고 유가 상승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이란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란의 대중국 석유 판매액은 이란 정부 지출의 약 절반에 달한다. 해협 봉쇄시 이란 경제가 입을 타격도 크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전해진 13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중 한 때 전 거래일 대비 13% 급등한 78.5달러(배럴당)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역시 전 거래일 대비 14%까지 급등한 77.62달러(배럴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두 유종 모두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긴 했지만 각각 72.23달러, 72.9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각각 전거래일 대비 7%, 7.3% 상승한 수치다.
한국은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 상승은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직접적으로는 원유를 중간재로 사용하는 상품가격을 상승시키고, 관련 산업 전반에 가격인상 효과가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주유소 휘발유 가격 역시 1~2차의 시차를 두고 오르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고유가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 국내 소비자물가는 0.92%p 상승 압력을 받는다. 수출 기업의 원가 부담이 커져 무역수지도 악화될 수 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 10% 상승시 82억 달러 적자 요인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 상승은 직접적으로는 석유화학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에서 정제된 나프타를 주원료로 쓰는데, 유가 상승시 나프타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이 때문에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수요 부진 등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시름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향후 (나프타 원료인) 원유 급등 사태가 장기화될지가 중요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안그래도 업계 전반적으로 ‘적자 행진’이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 미칠 영향은 복합적이다. 원유 도입 비용이 커지지겠지만, 석유제품 가격이 그보다 더 오르고 수요가 꾸준할 경우 실적이 개선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국내 정유업계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다만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될 경우 유가상승은 ‘악재’가 될 수 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2022년에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코로나19 종식 이후 급증하고 있던 시기에 유가가 급등해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반면 이번 유가 급등은 다르다. 트럼프 관세전쟁에 따른 무역 둔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될 수 있어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