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손무(孫武)는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군사 전략가이다. 그는 제나라 출신이지만 오(吳)왕 합려를 섬겨 절제 있고 규율 잡힌 군대를 양성했다. 이를 통해 초(楚)ㆍ제(齊)ㆍ진(晉)나라를 격파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는 병법서 13편을 남겼는데, 후일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불려진다.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현존하는 고대 병법서 중 가장 뛰어난 책이다. 전투에 필요한 전략ㆍ전술은 물론 삶에 교훈이 되는 내용들이 적잖아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의 구지편(九地編)은 전쟁터의 지형을 아홉 가지로 나누며 그에 따른 전략ㆍ전술을 제시하고 있다.
▲손자는 구지편에서 사생결단으로 싸우지 않으면 패하는 지형을 ‘사지(死地)’라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으며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부오인여월인상오야(夫吳人與越人相惡也) 당기동주이제우풍(當其同舟而濟遇風) 기상구야여좌우수(其相救也若左右手).”
풀이하면 “무릇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했다. 그런 그들도 같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면 서로 오른손과 왼손처럼 도왔다.” 그랬다. 춘추시대 오와 월은 철천지 원수였지만 위기의 순간엔 서로 도왔다고 한다. 바로 ‘적과의 동침’이다.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동주공제(同舟共濟)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의미다. 즉 한마음 한뜻으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것을 일컫는다.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도 재앙과 환난이 닥쳤을 때 모두가 협력하는 상황을 이르기도 한다.
이 성어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사용된다.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 지경에 놓이거나 국난 극복을 호소할 땐 그 쓰임새가 두드러진다. 오월동주(吳越同舟), 풍우동주(風雨同舟), 환난여공(患難與共), 동감공고(同甘共苦) 등이 비슷한 말이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여드레째다. 여느 때 같으면 활기가 넘칠텐데 올해는 무거운 적막감이 가득하다. 내란 사태, 탄핵 정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여파, 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 등 3고(高)의 지속 등으로 나라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사회 곳곳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한다. 농협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등이 신년 화두 사자성어로 동주공제를 채택한 게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는 을사년(乙巳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