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탄생지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도편추방(陶片追放·ostrakismos)’이라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었다. 민주주의 이상을 추구하고 독재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특정 위험인물을 10년 동안 추방할 수 있는 제도였다. 모든 시민이 참여한 투표로 결정되는 민주적인 절차였지만 결정이 되면 추방 대상자에게 변론할 기회가 없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도편추방의 실행 여부를 의회에서 제기하고,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투표는 두 달 뒤에 행해졌다. 이 제도가 살아있던 100년 정도 기간 동안에 총 13번 실행된 기록이 전해진다.
추방·격리·배척하다는 뜻의 영어단어 ‘오스트라사이즈(ostracize)’는 투표용지인 도편(ostrakon·사진)에서 유래됐다. 도자기 조각에 추방하고자 하는 인물의 이름을 새겨 투표하는 방식으로 도편추방이 이뤄졌다. 추방 결정이 나면 열흘 안으로 떠나야만 했고, 10년 이전에 돌아오는 이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재산과 권한을 모조리 빼앗기는 로마 시대의 추방제도와는 달리,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이는 아무런 불이익이나 사회적 편견 없이 지위·재산 등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또 국정 비상사태의 경우 추방당한 인물을 되부를 수도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 중에 페리클레스의 아버지인 크산티포스 장군이 추방됐다가 돌아온 것이 그 예다.
도편추방제는 민주적 통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을 견제하고,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불어 정치적 권위가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을 구현하며 시민의 참여를 촉진했다. 계엄선포-해제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유사한 성격이 있다. 국민 대다수에 의해 이미 추방된 지도자가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사태는 직접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다. 민중의 함성이 곧 정의로운 민의가 헌법인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