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인가 구악인가? 왕립제염소

2024-10-13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는 파리 외곽에 장벽과 징수소를 건설해 온갖 종류의 통행세를 거둬들였다. 대부분의 징수소는 왕립건축가인 클로드 니콜라 르두(1736~1806)가 설계했다. 당시 국가 전매품인 소금도 막대한 세금원이었고, 소금 생산은 곧 세수 확보를 위한 중요한 국책사업이었다. 루이 15세는 르두에게 효율적인 새 소금공장 건설을 지시했다.

당시 제염소들은 지하 소금샘 위에 공장을 세우고 증류시켜 소금을 생산했으나 연료용 목재 공급에 늘 애를 먹었다. 연료 수급이 관건임을 간파한 르두는 산림지역인 아르케세낭에 제염소를 세우고, 21㎞ 떨어진 샘에서 나무관을 통해 소금물을 공급하는 역발상을 택했다.

새 왕립제염소는 공장만 아니라 직원용 주거와 휴게소, 교회와 식량 자급용 농장까지 완비한 복합단지였다. 반원형 단지의 지름선 중앙에 감독관의 저택과 교회를, 좌우로 큰 두 개의 공장을 배열했다. 원호부에는 직원들의 숙소를 직종별로 나누어 건설했고 그 외곽에 농장을 부채꼴로 둘렀다. 1776년 완공한 제염소는 전체 계획의 절반에 해당했다. 미완성된 나머지 반원은 인근 농민들의 주거와 학교까지 수용해 완전한 원형의 농-공 이상도시로 계획했다.

계몽주의는 수학을 이성의 실체라 인식했고, 계몽주의자 르두는 제염소를 원형과 대칭의 엄격한 기하학으로 설계했다. 그는 실용적 입지 분석과 합리적 기능계획이라는 근대적 방법론을 실현한 선구자였다. 또한 독창적 건축 형태와 유토피아적 도시건설을 꿈꿨던 혁명가였다. 아르케세낭의 왕립제염소는 르두-건축박물관이 되었고, 여기에 전시된 60여 점의 작품 모형들은 여전히 창의적이고 현대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절대왕정의 수탈용 건물로 대혁명기에 대부분 파괴되었고, 고객인 왕족과 귀족들은 대부분 망명 또는 처형되었다. 그 역시 앙시앙 레짐의 부역자로 감옥에 갇혔고 단두대 직전까지 몰렸다. 그릇된 권력에 봉사한, 그러나 의식은 혁명적인 건축가의 아이러니한 숙명이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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