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돌이 된 사람들

2025-01-02

돌이 된 며느리

시주를 받으러 온 늙은 스님에게 쇠똥 한 바가지를 퍼주는 시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라 몰래 깨끗이 씻은 쌀을 챙겨주던 착한 며느리, 스님은 그녀에게 내일 동트기 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장 소중한 것을 챙겨 산에 오르라고 합니다. 산을 넘어갈 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도 함께 말입니다. 스님의 말에 깜짝 놀란 며느리는 시키는 대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기를 업고 산에 오릅니다. 한참을 오르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여인은 자신이 살던 집 쪽에서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 스님의 당부는 까맣게 잊고 뒤를 돌아보게 되지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짐작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때 돌아보지만 않으면 자유인데, 그대로 산을 넘어만 가면’

지금부터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작가인 두 주인공은 여러 지역에서 비슷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 설화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봅니다.

두 발이 돌이 되어 놀라는 여자의 모습이 그 순간 눈앞에 떠올랐다. 그때라도 다시 몸을 돌리고 산을 오르면 되었다. 아직 발이 굳었을 뿐이니까. 돌이 된 발을 끌고 몇 걸음 더 오르던 여자가 그러나 다시 돌아본다. 이번엔 종아리까지 돌이 된다. 무거운 두 다리를 끌며 여자가 더 비탈을 오른다. 고개를 넘어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 거기서 돌아보지만 않으면, 하지만 기어이 얼굴을 돌린다. 무릎 위까지 돌이 되자 더는 방법이 없다. 모든 집과 나무들 위로 차오른 물이 빠질 때까지 거기 서 있다. 골반과 심장과 어깨가 돌이 될 때까지. 벌어진 눈도 바위의 일부가 되어 더 이상 핏발이 서지 않을 때까지. 날과 달이 수천 번, 수만 번 지나가는 동안 눈비를 맞고 있다.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이 거기 있기에 계속 돌아보았나.

걸려 넘어지는 돌, 슈톨퍼슈타인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은 독일어 Stolpern(걸려 넘어지다)과 stein (돌)이 결합한 말입니다. 말 그대로 ‘걸림돌’이라는 의미지요. 가로세로 10cm인 이 동판에는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의 이름, 생년월일, 추방당한 날, 희생된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쾰른 출신의 조각가 군터 뎀니히는 발에 걸리는 돌처럼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취지에서 슈톨퍼슈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보면 발에 걸릴 정도로 솟아나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작고 예쁜 금속 조각이 땅에 박혀있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정도입니다. 조각에 새겨진 글을 읽다 보면 또 마음이 먹먹해서 한참을 서 있게 됩니다. 이 작은 기념물에 마음이 걸려 넘어진 셈입니다. 그들도 여기 이 자리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작은 ‘돌’은 이처럼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것, 한참을 멈추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내 주변에도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잔잔하게 빛나는 우리의 일상보다 소중한 건 없다고 일러주는 ‘돌’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아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길 위에 새겨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이야기는 이제 조금 지루한 참입니다.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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