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유럽 여행안내서

2025-11-26

내가 독일에 있는 친구와 몇달간 집을 바꾼다고 했을 때 가장 눈을 빛낸 것은 엄마다. “유럽…” 엄마는 맛있는 거라도 상상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로 엄마는 육십이 넘도록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태국도 가고 대만도 가고 일본도 다녀왔지만 외국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외국은 ‘유럽’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어.” 엄마는 말했다.

마침 엄마가 일을 쉬는 달이었다. 엄마가 일하는 노인일자리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그것도 1~2월엔 일을 주지 않는 공백기였다. 백수 신세인 셈이다. “오실래요?” 선뜻 물으려다가도 말끝이 흐려졌다. 날씨 좋은 계절에 엄마 친구들과 함께 가이드 끼고 오시면 좋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그럴 시간과 돈은 없어왔다. 그럼에도 생전 처음 가는 유럽이 이토록 해가 짧고 추운 겨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엄마의 눈빛이 유리알처럼 빛났다. 그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갈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네.”

그래서 엄마의 비행기표를 끊었다. 만약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고 해도, 엄마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아서다. 엄마는 면사무소에서 준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내 생에 유럽이라니. 말도 안 돼.” 먼 곳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 너무 많은 것이 담긴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먼저 떠나고 엄마가 나중에 오시기에, 엄마 혼자 이 먼 곳까지 오셔야 한다는 점이었다. 비행시간만 최소 15시간 이상이었다. 직항도 없었다. 이런 경우가 없을까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다. 없는 게 없다는 유튜브에도 환갑 넘은 아줌마 혼자 장기 비행을 도전할 때 팁을 알려주는 릴스는 없었다. 그제야 남편도 자식도 없이 먼 길을 혼자 떠나게 된 엄마의 운명이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를 저지르는 것인지 불효를 저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울 가는 버스를 타는 것도 번번이 예매에 실패해 매번 나에게 전화를 거는 엄마였다. 영어도 모르고 여행은커녕 공항조차 혼자서는 가본 일이 없는 엄마였다. 나는 복잡한 공항 안에서 허우적대는 엄마를 금방 상상할 수 있었다.

빈 종이에 비행기 편명부터 커다랗게 적었다. “엄마가 타야 하는 비행기 이름이에요.” 가장 걱정인 것은 환승이었다. 수많은 표지판 사이에서 사람들 틈에 휩쓸려 엉뚱한 데로 가기 십상이었다. 휴대폰 사용도 어려울 뿐 아니라 와이파이를 얻기 위해 키오스크 등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언어는 모두 영어이고 말이다. 엄마는 내가 영어와 그 발음을 대문짝만하게 쓰면 더듬더듬 따라 읽었다. “엄마. 내리면 트랜스퍼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으로 쭉 가는 거야.” 나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라고 쓰고 엑스표를 그렸다. “여기는 가면 절대 안 돼.” 엄마가 물었다. “파이널, 데스티니?” “아니, 엄마. 그거는 운명이고. 이거는 데스티네이션. 목적지예요.” 엄마는 데스티네이션을 몇번 따라 읽었다. 그리고 불렀다. “데스티니~ 유얼 마이 데스티니~”

쓰다 보니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항에서 해야 할 일, 환승할 때 해야 할 일, 도착해서 해야 할 일, 공항 표지판 영어 단어장까지 내용이 너무 방대해져 결국 컴퓨터 문서로 다시 정리했다. 커다란 폰트로 인쇄했더니 A4용지로 14장이 되었다. 제목은 엄마 유럽 여행안내서였다. 내가 두 달 치 짐을 싸는 것보다 이걸 만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혹시나 길을 잃었을 경우를 대비해 ‘○○번 비행기를 타는 길을 알려주시겠어요?’ 같은 말을 영어로 크게 인쇄한 카드도 제작했다. 언제라도 누구를 붙잡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엄마는 내가 쓴 종이들을 끌어안고 침실로 갔다. 여전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해낼 수 있을까. 생의 가장 큰 비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의 운명을 상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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