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 중 교도소에서 긴급조치 해제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장기간 옥고를 치른 60대 남성이 46년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병만)는 4일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김용진씨(69)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77년 학내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듬해 수감 중이던 서울구치소와 공주교도소에서 각각 “긴급조치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돼 형량이 1년6개월 늘어났다. 유신헌법에 기반한 긴급조치 9호는 공중전파 수단이나 표현물 등으로 유신헌법을 부정한 경우 처벌토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었다.
긴급조치 9호는 2013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위헌 판단이 내려졌고, 이후 과거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활발히 이뤄졌다. 김씨도 최초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10여년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뒤로 과거 사건을 잊고 지내던 김씨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겪은 후 옥중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 판단도 받기로 했다.
그는 지난달 16일 재심 사건 공판 최후 진술에서 “국가기관이 각자 부여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막아낸 점이 이번 비상계엄과 50여년 전 유신헌법 선포 당시가 다른 점”이라며 “국가기관이 부여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민주주의가 회복된 점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주의의 역사는 앞선 세대가 쓰던 작품을 다음 세대가 이어 써가는 연작 소설과 같다”며 “다음 세대가 쓸 작품이 훨씬 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며 “이 사건은 적용 법령인 긴급조치 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만큼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재판장인 김병만 부장판사는 선고 이후 별도로 “유죄를 선고한 것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무죄를 선고한 것도 대한민국 법원”이라며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선고가 단순히 피고인이 과거 겪었던 고초가 잘못됐음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고인이 말씀하신 취지와 같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국내 상황이 혼란스럽고 사법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어제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안정적으로 정리돼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