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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자”는 감사원의 감사 협의(마감 회의) 제안을 의전서열 등을 이유로 거부했던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에따라 지난달 27일 공개된 선관위의 조직적 채용 비리 의혹을 담은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엔 통상의 감사 보고서와 달리 피감 기관의 책임자가 감사 지적 사항의 후속 조치를 약속하는 내용을 담지 못했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선관위 감사에서 고위직 비리가 드러난 만큼, 최종 책임자인 노 위원장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선관위를 한 달 가까이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감사 결과 공개 직후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을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선관위의 태도는 이와 달랐던 것이다.
감사원은 2023년 5월 선관위의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이 터진 뒤 그해 7월~11월 사이 감사관 51명을 투입해 선관위에 대한 현장 감사를 실시했다. 그 뒤 2023년 12월~2024년 1월 사이 선관위 측에 노 위원장이 참여해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마감 회의를 제안했다. 감사원은 감사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 피감 기관의 장과 감사 결과를 협의해오는 절차를 밟아왔고, 이를 마감 회의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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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관위 측에서 통상 차관급(사무차장)이 마감 회의에 참석한 관례를 들며 노 위원장의 참여에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례에 따라 사무차장의 감사 회의 참석 의사를 전했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장관급인 사무총장 참석도 고려했지만, 오히려 감사원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다만 선관위는 감사원의 요청이 노 위원장에게 보고됐는지에 대해선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이처럼 마감 회의를 둘러싼 두 기관의 협의가 결렬되며 마감 회의는 열리지 못했고, 선관위의 의견을 서면으로 받는 수준에서 감사가 마무리됐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주요 감사는 피감 기관장과 감사 결과를 협의해왔기에 이례적 요청이 아니었다”며 “선관위법상 선관위의 최고 책임자는 사무총장이 아닌 노 위원장”이라고 했다. 그 뒤 감사원은 공개문 작성과 감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지난달 27일 최종 감사 공개문을 발표했다.
감사 공개문을 뜯어봐도 선관위가 밝힌 ‘엄중 조치’와는 거리가 먼 선관위의 답변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친·인척 채용 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선관위 직원들은 포렌식을 통한 감사원의 증거 제시에도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거나 “헌법 기관은 법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 내용이 공개문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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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선 구체적 사실관계는 확인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확인한 바 없다”거나 “관련자의 답변으로 갈음하겠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감사원 측은 “선관위가 보내온 일부 답변서는 보고서에 기재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며 “선관위 내부에선 채용 비리 심각성에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노 위원장은 2023년 6월 채용 비리 의혹을 둘러싼 비난 여론이 들끓자 채용 비리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며, 선관위 최고 책임자로서 “진상 규명을 하는 데 철저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었다. 하지만 감사원의 공개문에 따르면 ‘협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감사원 조사 결과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났다. 선관위가 2023년 4월 선관위 공무원 규칙 제2조 4항의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를 “준용할 수 있다”로 개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자녀의 채용 비리 의혹이 터진 이듬해에 이러한 개정을 했는데, 선관위 직원들이 채용 비리 관련 징계와 수사 등을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을 선관위가 만들었다고 감사원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지난 10년(2013~2023년)간 각 시·도 선관위가 실시한 291회 경력 채용(경채) 전수조사에서 878건의 규정 위반이 발견되는 등 모든 채용이 법령 위반이었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왔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관한 규정 준용 여부 판단은 선관위 고유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공개된 날 함께 나온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 감찰이 위헌”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선관위를 감시할 외부 수단은 사라진 상태다. 국민의힘에선 선관위를 감사하는 한시적 기구를 설치하는 특별감사관법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국정조사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법안 통과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는 감사 기구를 사무처에서 분리하고, 다수의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도 설치했다”며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꼼꼼히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