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오거지서(五車之書. 다섯 오, 수레 거, 어조사 지, 글 서)다. 앞 두 글자 ‘오거’는 ‘큰 수레 다섯 대’다. ‘지서’에서 ‘지’는 ‘~의’, ‘서’는 ‘책’을 뜻한다. 이 네 글자가 합쳐져, ‘다섯 수레 분량의 서적, 즉 많은 책’이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장자(莊子) ‘천하(天下)’편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사람은 모름지기 많은 책을 읽어야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 구절은 두보의 시 ‘제백학사모옥(題柏學士茅屋)’에 인용돼 더 유명해졌다. ‘한우충동(汗牛充棟. 책 수레 끄는 소가 땀을 흘리거나, 방의 천정 근처까지 쌓인 많은 책)’이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근대화 이전에, 중국에서 많은 책을 수집하여 소장한 인물로는 범흠(范欽. 1506~1585)이 유명하다.

관료 겸 장서가(藏書家) 범흠은 명(明)나라 중기에 태어났다. 27세에 진사에 합격한 후, 푸젠(福建), 윈난(雲南) 등 여러 지방과 수도 베이징에서 관료 생활을 했다. 그는 이동이 잦은 업무 환경을 진귀한 책 수집에 적극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수집한 책은 경서(經書), 시문집 판본은 물론이고, 근무하는 지역의 지방지(地方誌), 과거 합격자 명단 등 나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나 소책자까지 매우 다양했다.
손에 넣은 귀한 책들이 늘어나자, 그는 50대 후반부터 약 5년에 걸쳐 고향 닝보(寧波)에 천일각(天一閣)을 건립한다.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을 끝으로 관료 생활을 은퇴한 후, 주로 천일각 서적들을 관리하거나 집필하며 소일했다. 범흠이 평생 수집해 천일각에 보관한 서적은 그의 열정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규모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설 장서루(藏書樓)로 알려지고 있는 천일각은 현재 관광 명소다.

말년에 그는 어떻게 ‘천일각’에 보관된 서적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했다. 고령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천일각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은(銀)으로 바꾼다. 그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는 일찍 세상을 떴다. 하루는 범흠이 장남과 둘째 며느리를 불러 제안한다. “너희는 유산 가운데 하나씩만 물려받을 수 있다. 만약 이 은을 원한다면, 천일각은 포기해라. 거꾸로, 만약 천일각을 원한다면, 돈은 깨끗이 단념해라.”
장남이 먼저 대답했다. “아버님, 제게 천일각을 물려주십시오. 보존에 소요되는 경비는 제가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흡족한 범흠은 장남에게 자손 대대로 천일각과 관련해 지켜야 할 규칙들을 추가로 설명해준다. 꽤 까다로운 이 규칙에는 ‘가문에 속하지 않은 누군가의 천일각 출입을 일체 금한다’는 조항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주도면밀한 당부들 덕분에, 천일각과 많은 서적은 아주 긴 세월 동안 형체를 유지하며 보존될 수 있었다.

닝보는 상하이에서 그리 멀지 않고, 바다와 가깝다. 고온다습하여, 곰팡이와 벌레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첨단 과학에 의존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범흠과 그의 후손들이 신경써야 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집가들은 도난에 주의한다. 장서가들도 도둑을 경계한다. 대가족이 함께 거주하던 시대였기에, 범흠은 천일각을 설계할 때 도난 위험엔 딱히 주의하지 않았다. 훗날, 중국 근대화 초창기에 천일각에 도둑이 몰래 들어왔다. 그 도둑은 서두르지 않았다. 낮에는 서가에 숨어 잠을 자고, 대추로 허기를 달랬다. 심야에 일어나 값나가는 책만 골라 상하이까지 작은 배로 실어 날랐다. 관청에서 범인을 색출해 심문해보니, 상하이 서점 상인들의 사주(使嗾)를 받은 치밀한 범행이었다.
천일각을 지으면서 범흠은 화재 위험에 나름 철저하게 대비했다. 불이 났을 때, 신속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천일각 바로 옆에 큰 연못을 만들었다. 천일각에서 ‘천일’이란 두 글자도 주역(周易)의 ‘물’ 관련 문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거지서. 이젠 필요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다. 수고스럽게 몇 수레의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다. 이런 환경에서도 인문학이 강조되고, 다독이 여전히 권장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이 의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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