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쓰는 거의 대부분이 말이 외국어의 번역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런 ‘번역’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고전번역원과 한국문학번역원 등 번역 관련한 2개 공공기관이 있다. 이름 그대로 고전번역원은 우리나라 한문고전을 번역하는 기관이고 문학번역원은 문학작품을 번역한다. 고전번역원은 주로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고 문학번역원은 한글을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서 문학번역원은 익히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들 기관의 이름이나 성격을 보면 바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같은 ‘번역원’인데 하나로 합치면 안되나. 바로 “안된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글자 그대로 전통 시대의 한문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기에도 어려운 한문고전들을 한학자·한글학자들이 한땀한땀 우리말로 엮어서 이런 기록들이 일반에게 쉽게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임무다. 1965년 설립된 ‘민족문화추진회’가 모태로, 이것이 2007년 현재의 한국고전번역원으로 확대됐다.
반면 한국문학번역원은 보다 최근인 1996년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목표로 세워졌다. 문학번역원과 관련된 번역가는 우리 문학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우리 문학을 영어 등 외국어로 옮기는 일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관료적으로 보면 한국고전번역원은 교육부,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각각 있다.
두 기관의 유기적 관계 필요성을 필자가 새롭게 인식한 것은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고전번역원 대강당에서 진행된 ‘한문고전번역 60년 - 한국 문화와 문명의 지평’ 학술대회에서다.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아 학술행사를 연 자리에서다. 이날 여러 강연자가 인공지능(AI)을 언급했다. 최근 모든 분야에서의 최고 이슈가 AI이니 당연한 일이었을 테다.
이날 ‘한국고전번역 60주년의 회고와 전망’을 발표한 안병걸 전 안동대 동양철학과 교수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할 능력을 갖춘 번역자를 확보하고 끊임없이 길러내는 일이다. 실상 고전번역의 품질을 높이기는 당금에 비약적으로 빠르게 진화 중인 AI가 해낼 것이다. (중략) 이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AI가 간여하므로 아무리 고난도의 고전번역이라도 AI가 충분히 해낼 것이다. 다만 AI가 만든 성과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고 말했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도 “AI의 파급 효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모든 미래 전망에 AI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학 연구와 고전번역 사업도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한문고전도 AI로 번역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당연하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나. 한국문학번역원의 논의는 한 발짝 더 나가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난 6월 25일 서울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문학번역의 미래 - AI 시대 인간 번역의 가치’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마승혜 동국대 교수는 “AI 활용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보다는 AI를 문학 번역에서 인간 번역가의 역량 강화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학 번역과 AI를 접목하는 교육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지혁 소설가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다가온 AI를 위협으로 여기지만 결과적으로 이제 우리는 AI와 협업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분위기는 ‘AI 시대 인간 번역의 가치’라는 주제 그대로 AI의 문학번역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체로 시대적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날 주제 발제를 맡은 김현택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AI가 인간의 지적 정신적 활동을 완전히 대체할 거라는 성급한 판단으로 번역 활동의 중요성을 폄하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아쉽다”면서 “AI가 상상력, 창조성, 감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인간의 정신 활동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자, 필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AI가 번역이라는 행위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면 실제 고전번역이나 문학번역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기관으로 조직이 나눠져 있는 것은 사실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가 한다면 구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번역이라는 작업의 특성에 맞게 AI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사람’은 분야별 AI 번역 결과에 따라 다듬으면 된다. 번역 AI는 이미 상당히 활성화돼 있는데 더 나아가 국가 번역 AI 시스템을 꾸리기 위해서는 규모가 클 수록 좋기 때문에 개별 번역원보다는 ‘한국번역원’이 유리하다.
또 우리의 한문고전이 한글로 번역되고 또 다시 외국어로 재번역돼 해외로 확산되는 데도 유리한 구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이야기에서 보듯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은 K문화콘텐츠 스토리의 보물창고지만 대부분이 한문으로 작성돼 있다는 점에서 고전번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최근 번역원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번역대학원대학’ 때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현재 운영 중인 ‘번역 아카데미’를 정규 교육(석사)과정 기관인 ‘번역대학원대학’으로의 승격을 확정하고 2027년 개교를 준비중이다. 대학 이름에 ‘문학’은 빠져 있다. 번역대학원대학에 문학 외에 다른 것도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일단 문학을 위주로 한다는 쪽으로 개교가 진행 중이다. 물론 고전을 포함, 다른 분야도 당연히 포함할 수 있다.
수출 등 대외 교류를 통해 성장해야 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번역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득권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국가전략으로서의 번역 지원·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AI 시대는 번역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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