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과 대법원 전원 ‘합의’체

2025-05-29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입법과 행정은 물론 지자체장과 교육감이 선출직인 것과 비교하면 국민주권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재판권은 법관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행사하는 것인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법부 구성에 국민 관여는 배제돼 있다. 태생적으로 국민과 멀어져 있는 국가권력이다.

국민이 직접 뽑아서 권력을 준 것도 아닌데 사법권은 막강하다. 예를 들어 선거 소송에서 법원이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면 유권자의 표심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 다른 선출된 권력과 달리 사법부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민주적 정당성이 약점이고 늘 비판거리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사법부를 정치화한 사법농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국민은 투표로 심판할 수 없었다. 국민의 심판 대상이 아닌 것은 여론이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사법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지만,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독이 될 위험이 있다.

사법부 존립 근거는 공정한 재판으로 쌓은 국민 신뢰뿐이다. 정치적 다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신뢰, 양심과 법률에만 구속된다는 믿음, 법관 윤리를 지킨다는 신망, 여론에 좌우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어떤가. 사법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유권자 패널조사에 의하면 10점 만점에 4점도 못 받았다. 2008년 도입한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국민을 재판에 참여시키면 법 감정과 상식을 반영할 수 있어 사법 독립과 신뢰가 높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별로다. 그렇다고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을 선거로 뽑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국민주권과 멀어져 있는 사법부를 국민이 감시하고 입법이 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선이 다가오지만 법원개혁 공약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최고법원이 내리는 가장 권위 있는 법적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다. 대법관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라는 의미에서 ‘전원’(全員)이고, 의사결정 방식이 ‘합의’(合議)라는 점에서 합의체다. 합의제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토론 과정을 거쳐 판단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 합의제가 잘 작동하려면 구성원의 다름이 전제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다양하지 않으면 독임제나 단독재판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대법원 구성은 서울대 법대, 50대, 고위 법관 출신, 남성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서오남’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대법원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합의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수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 그에 대한 반박 의견이 오가는 치열한 토론과 숙고를 거치지 않아도 다수가 확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스티스(Justice·정의)’라고 불리는 대법관이 모여 정의라고 선언했지만,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비슷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고위 법관 위주로 대법원이 구성되면 전원합의체나 소부에서 일치된 의견을 모으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법관 인적 구성이 다양하지 못했던 대법원장 시기에 전원합의체 판결이 드물었던 이유다. 진정한 합의제가 되려면 직업적 배경과 경험, 성별, 이념과 가치관 등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사법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국회에서 헌법재판관 3인을 선출하듯 3인의 대법관을 국회가 제청하는 방안,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수를 줄이고 일부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방안,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축소하고 대법원장을 대법관회의에서 호선하는 방안 등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사법부에 민주적 정당성을 갖춰줘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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