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윤석열이 ‘비상대권’을 언급해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일본이 1889년에 선포한 ‘대일본제국헌법’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제31조가 바로 왕의 비상대권 조항이다. 제2장 ‘신민의 권리와 의무’ 중 제31조는 “본장에 게재된 조규(條規)는 전시 또는 국가사변의 경우에 천황대권의 시행을 방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제1장(천황)의 제1조부터 제17조까지 명시한 무소불위 권력이 비상시에도 그 권한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비상대권은 시행된 적도, 필요도 없었다. 근대 일본은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났다. 그 사이 헌법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고, 국민들만 전쟁터로 끌려나갔다. 식민강권통치를 당한 우리야 말해 무엇하랴.
대권이든 비상대권이든 왕의 권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윤석열이 진짜 왕이 되고 싶은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왕권통치로부터 독립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백성의 생살여탈권을 맘대로 휘둘렀던 권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지금은, 권력자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기대하기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의 시대다. 윤석열은 백성을 왕의 충실한 신민으로 삼아 지배하고 싶었다. 그는 백성들이 잠재적 범죄자이므로 자신의 명령을 따를 것으로 보았다. 일말의 지도자 자격도 없는 도착된 자신의 한계인 동시에 법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윤석열은 국민 분열의 선거공학으로 집권했으며, 그 분열을 치유하기는커녕 왕권을 획책하다가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는 애초에 국민을 하나로 보지 못했다. 정치인은 권력의 무게만큼 엄격한 수행자가 돼야 한다. 깨달음의 책인 <무문관(無門關)> 제1칙에서 조주선사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무(無)”, 즉 없다고 대답했다. ‘있는가 없는가’라고 묻는 자의 분별심을 타파한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 좌우·상하·남북은 없다. 허공 같은 마음엔 구획이 없다. 우주를 품는 부처는 모든 중생을 자신이 돌봐야 할 자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권력욕에 찌든 자들은 백성을 도구로 본다. 그 위에 변절과 배신, 중상모략으로 표변하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품격 있는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가시 돋친 타락한 언어로 상대를 공격한다.
윤석열 몰락의 교훈은 이처럼 분열로 얻은 권력은 ‘폭망’한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힘을 숭배한 비굴한 양심들, 악과 결탁한 기회주의가 취한 방식이다. 독재와 군사정권은 물론 이에 굴종하며 일신·일족의 안위를 도모한 그들이 주범이다. 우리가 다시 선거를 치르는 이유는 바로 이 무도함을 심판하기 위해서다. 참된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는 시민을 이념·지역·세대·계층으로 갈라치기 한 자들의 자기반성이 필수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사면의 원칙을 인종차별정책 아래에서 폭력과 살상을 자행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힌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못 박았다. 나의 한 표는 그러한 진실 앞의 참회와 반성을 요구하는 함성이자 천둥소리다. 억울한 죽음과 피눈물 나는 고통 앞에서 최소한 머리 숙여 사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의 교훈은 0.1%의 우위라도 승자독식하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대해와도 같다. 강물이 대해에 합류할 때, 자신을 낮추어 스스럼없이 상대를 품는다. 마침내 대해는 모든 생명체의 요람이 된다. 어쩌면 바다의 형체를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실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요동치는 파도처럼 생생약동하는 현실만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애스트라 테일러는 <민주주의는 없다>에서 자유와 평등, 갈등과 합의, 포함과 배제 등의 상대적인 가치가 긴장하고 충돌하는 현장이 민주주의의 실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나라의 지도자는 혼돈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균형과 조화를 낼 수 있는 자가 돼야 한다. 이 선거가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과거를 일소하고 세계의 모범국가로 진출하는 대축제가 되길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