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의 장시 ‘오적’을 필사하며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의 이야기 같다. 군사정권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지배하려고 하는지 경험한 사람은 잊을 수 없다. 작년 12월 3일 밤 10시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세력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언급하며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군을 동원했다. 그때 나는 사장남천동 유튜브를 시청 중이었다. 진행자들이 방송을 중단하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떠났다. 이재명 대표의 휴대폰 영상은 흔들렸고 국회로 모여달라는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서울 1번 국도에서 성장한 나는 탱크와 소총으로 무장하고 군사들이 이동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야간등화관제가 내려진 가운데 어두운 거리에 탱크의 울림과 군홧발 소리가 빈 거리를 울렸다. 군인들은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며 한강 다리를 향해 진군했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총알이 날아올 때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상했던 기억이 났다.
6월 3일 선거가 있다. 21대 대통령 선거는 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파면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재외투표, 선상투표, 사전투표, 본투표가 있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투표에 참여하면 된다. 이 선거는 계엄으로 인해 앞당겨진 제21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의 임기가 정상적으로 만료되는 경우 2027년 3월 3일에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에 따라 대통령직이 공석이라서 앞당겨 이루어진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상당수의 국민이 내란을 이끌던 윤석열의 계엄령에 관한 위험성과 처벌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영화관에 가거나 개 산책을 시키거나 한강 둔치로 소풍을 가는 평화로운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심지어는 내란이 무슨 죄가 되냐는 울산 시민도 멀쩡하게 삶을 영위 중이다.
윤석열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는 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 통제, 전공의 및 의료인 복귀 거부 시 처단, 계엄법에 따른 영장 없는 체포, 구금,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통제 조치를 선언했다. 군인들이 서울 거리에서 총을 메고 가방을 뒤지고 시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지배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 순간 머릿속에서 SNS상 몇 군데에 서명했는지, 어떤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는지 순식간에 자가 검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무기력에 빠졌다.
박정희 정권 때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오적’이라 정하고, 그 행태를 유머러스하게 비유한 이야기 시 ‘오적’을 발표했다. 1970년 5월에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서 발표했고, 군사정권은 <사상계> 출판을 금지시켰다. 그 이후 오적을 읽거나 소지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기 때문에 몰래 숨어서 읽었던 시절이었다.
한강 작가도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5.18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2014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3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한강 작가의 도서가 정부가 주관하는 우수도서 선정이나 보급 사업에서 제외됐던 이유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문학은 정치를 이끌기도 하고 정치가 시민을 탄압하면 저항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 작가를 탄압하여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한다. 작가들이 제주 4.3과 광주 5.18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살인하는지 알리고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거뿐 아니라 선거에 참여해 국가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하며 군사정권의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막아내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계엄 세력에게서 권력을 박탈해야 한다. 두려움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선거에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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