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00조 'SMR' 열리는데…한국, 12년간 인허가 2건뿐

2024-10-17

유럽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업체인 A사는 최근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원전) 제작‧건설 업체와 기술 협력을 재검토 중이다. 물 대신 다른 냉각제를 쓰는 4세대 SMR을 개발 중인 A사는 한국 업체들의 풍부한 원전 제조‧건설 경험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에 SMR 관련 제도가 없어 한국 업체와 기술 협력시 인허가 과정에 차질이 생길까 불안하다. 다른 국가에서 협력 대상을 찾을지 고민 중이다.

A사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SMR 인허가 기준은 냉각제로 물을 쓰는 기존 대형 원전에 맞춰져 있어 헬륨‧소듐같이 물 아닌 다른 냉각제를 활용하는 SMR에 대한 인허가나 규제 심사에 한계가 있다”며 “인허가를 못 받으면 기술을 개발해도 한국에서 만들 수가 없을테니, 기술력이 한국보단 못해도 이런 위험이 덜한 파트너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SMR이 부상하는 가운데, 한때 SMR 기술 선도국이던 한국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은 원자력 기술 선진국인 미국보다 8년 앞선 2012년 SMR 국제 기준을 먼저 통과하는 저력을 보였으나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로 SMR 관련 제도 정비가 지지부진했던 영향이다.

17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12년간 SMR 관련 인허가 사례가 단 2건이었다. 2012년 대형 원전의 축소판인 스마트원전에 대한 표준설계인가, 지난 9월 진행한 스마트100 표준설계인가 뿐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가를 받아 2015년엔 사우디아라비아에 2조원 규모 스마트원전 수출 계약도 땄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SMR 개발 계획들이 엎어졌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이 커지면서 전력 소비량이 급증하자 선진국들은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SMR 기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탄소 배출이 없는 데다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의 한계로 꼽히는 전력 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없기 때문이다. 대형 원전의 가장 큰 우려인 방사선 유출 위험도 적다. SMR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반경은 대형 원전(30㎞)의 100분의 1인 300m 수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SMR 시장이 2035년 630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에선 2040년이면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SMR은 블록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작해 전력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송전망 건설에 대한 부담도 없다. 로버트 에클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지난 8월 포브스 기고문에서 “SMR은 필요한 부지 면적이 작고 발전 수명이 40~60년으로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길어 탈탄소와 급증하는 글로벌 전력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봤다.

이런 이유로 많은 전력이 필요한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빅테크 기업들도 앞다퉈 SMR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들은 대형 원전처럼 물을 냉각제로 쓰는 경수로형보다 헬륨이나 소듐 등을 활용해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비경수로형에 주목하고 있다. 설비 투자 비용이 경수로형보다 적게 들고 소형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SMR 83종 가운데 비경수로형이 48종으로 절반이 넘는다.

빅테크들이 투자하는 SMR도 비경수로형이 대부분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아마존은 SMR 개발 기업 3곳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중 미국 엑스에너지는 헬륨 기체로 냉각하는 방식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전력 공급 계약이 아닌 직접 SMR 개발에 투자한 건 빅테크 중 아마존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15일 구글이 전력 공급 계약을 맺은 카이로스파워는 용융염(액체화 상태의 소금)을 냉각제로 사용한다.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는 냉각제로 액체 소듐을 사용한다.

한국에선 비경수로형 SMR 관련 지침이나 인허가가 진행된 적이 없다. 2012년 비경수로형에 대한 ‘규제기반연구’를 추진한 적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흐지부지됐다. 현재 한국은 SMR 인허가시 단일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SMR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대형 원전 기준이 토대다.

예컨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반경이 SMR은 300m지만, 대형 원전 수준으로 해당 부지 반경 20~30㎞ 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동의를 구해야 하고 대피소와 대피로도 마련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은 SMR 관련 규칙이 없는 상황”이라며 “제도만 정비되면 미국이 상용화를 선언한 2030년 이전에 한국도 민간 기업 주도로 SMR을 가동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은 해외 투자를 통해 수주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은 2019년부터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1억400만 달러(약 1425억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지난해 캐나다 정부와 SMR 기술 협력에 나섰다. SK그룹도 2022년 미국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427억원)를 투자했다.

최수진 의원은 “SMR 노형에 상관없이 단일한 인허가 기준으로는 글로벌 경쟁이나 협력을 하지 못하고 고립만 초래한다”며 “국내 자체 개발 노형 뿐 아니라 해외에서 개발한 노형도 국내에서 설계·인허가 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국이 글로벌 SMR 시장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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