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즈음,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두 번의 토요일을 경험하였다. 12월 7일 토요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당시 국회의 첫 번째 탄핵 찬반 투표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콘서트홀을 꽉 채운 2000여 명의 청중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공연이 시작되면서 모두 음악에 푹 빠졌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죽음의 고독’ 등을 표현한 말러 교향곡의 장엄한 사운드는 잠시 현실을 접어 두고, 음악 그 자체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말러 교향곡이 주는 위로와 힘
여의도 국회 앞에서 부르는 K팝
음악으로 하나 된 두 번의 토요일
압도적인 사운드와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 우울한 민속 노래가 결합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은 긴장감과 불편함을 풀어주며 마음의 평안함을 선사하였다. 그렇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말러 교향곡은 세계 운행을 고발하기 위해 그것을 모방하는 것이며, 그 곡들이 세계 운행을 파현시키는 그 순간들은 동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라는 철학자 아도르노(T. W. Adorno)의 평이 보여주듯이, 말러 음악에는 세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담겨 있다. ‘현실은 진실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현실에 대면하는 음악이 바로 말러의 교향곡인 것이다. 그래서 청중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 보낸 뜨거운 박수는 말러의 음악이 고단한 현실에 한줄기 위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음악으로 현실에 대면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표현으로도 읽혔다.
국회의 두 번째 표결이 진행되고 결과가 발표된 지난 토요일 14일 저녁. 여의도 국회 앞 군중들 속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들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K팝이 집회 현장에서 노래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직접 경험하니 그 생동감이 대단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김정배 작사, 켄지 작곡)는 따라 부르기는 쉽지 않은 노래였지만, 경쾌한 리듬 속에서 활기가 넘쳐 그 음악적 흐름에 동참하게 하는 곡이었다.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등 가사가 주는 메시지는 이 노래를 소환한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흔들며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멋졌다. 뿐만 아니라 ‘삐딱하게’, ‘소원을 말해봐’ 그리고 ‘아모르 파티’도 울려 퍼졌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로 시작하여 ‘오늘 밤은 삐딱하게 내버려둬’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비롯해 노래들은 모두 신나고 경쾌했다. 사실 집회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하면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먼저 떠오른다. 1970년대 시위 현장을 주도했던 ‘아침이슬’은 나지막하게 시작하여 힘껏 목청을 높이며 결연히 부르는 노래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등의 가사 역시 진지하고 단호하다. 그런데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음악도 변화되고 있었다.
음악은 이렇게 사회와 함께 한다. 보통 ‘음악은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이라고 말하며 음악의 사회성을 말하지만, 음악은 단순한 사회의 반영을 넘어서 사회를 통합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예술이다. 현실적인 삶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리얼리즘 미학의 대표주자 루카치(G. Lukacs)는 음악이 ‘외부 세계를 직접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세계인 감정을 모방하고 반영하는 이중의 모방’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음악 속 추상적인 음조의 흐름 또한 충실한 사회의 반영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지만 ‘삶의 체험이 음악으로 드러난다 해도 음악의 속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은 예술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기에 루카치의 주장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예술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자’라는 모토를 가졌던 작곡가 아이슬러(H. Eisler)는 자신의 음악으로 혁명에 불꽃을 붙였다. 윤이상은 ‘광주여, 영원히’에서 역사적 사건을 음악에 담아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하였고, 많은 음악가가 이 시도에 화답했다. 이번 12월, 교향곡과 대중가요라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예술을 통해 음악의 사회적 힘을 실감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턴테이블에 말러의 교향곡 음반을 넣으며,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를 흥얼거려 본다. 때로는 열띤 강연보다 한 곡의 노래, 한 곡의 음악이 군중을 설득하고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진다. 음악은 그런 것이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