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막는 대신 아이들의 용기를 북돋는 가족문화와 가정교육[BOOK]

2025-11-28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

수전 도미너스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딸들의 고등학교 과제 리포트를 훑어보고는 빨간펜으로 시뻘겋게 피드백을 해 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동시에 딸들에게 자율권을 줬다. “이걸 그대로 제출해서 C나 D를 받아도 되고, 아니면 다시 써도 돼”라며 최대한 중립적으로 말했다. 딸들은 이런 말을 듣고 자발적으로 리포트를 수정했다. 어머니는 “이제 B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했다. 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리포트를 추가 수정해 제출했다. 결국 모두 A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녀 양육 스토리의 주인공은 다른 고교의 교사였던 어머니 에스터 워치츠키다. 세 딸 중 한 명은 수전 워치츠키. 훗날 유튜브 CEO를 지낸 수전은 구글 초창기 핵심 멤버이자, 유튜브를 인수하자고 직원들을 설득한 기획자로 유명하다. 수전은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자신의 차고를 선뜻 빌려줄 만큼 선구안 좋은 능력자였다. 세 딸 중 막내 앤은 ‘23앤드미’라는 소비자 직접 유전자 검사기업 설립자인데 이 회사는 절정기에 그 가치가 60억 달러에 달했다. 앤은 언니 수전으로부터 브린을 소개받아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나머지 한 명의 딸은 HIV와 아동 비만 확산을 연구하는 종신교수이자, 프랑스어·스페인어·스와힐리어 구사자가 됐다.

케네디가(家), 『제인 에어』를 쓴 샬럿과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자매로 유명한 브론테가(家) 등은 가족들이 잇달아 성공신화를 쓴 유명 가문이다.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은 그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 워치츠키, 그로프, 무르기아, 홀리필드, 첸, 파울루스 등 여섯 가족의 가정교육과 가족문화를 다룬다. 미국 언론인인 지은이는 ‘왜 어떤 가족은 한 집안의 모든 자녀가 케네디가나 브론테가처럼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걸까’라는 평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자료를 찾고 관련자들을 심층 인터뷰 했다. 발달심리학과 유전학 방법론을 비롯해 과학적 접근을 적절히 동원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그로프 가족의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류머티즘 전문의인 제리 그로프와 아내 지닌은 3남매를 뒀다. 첫째인 애덤은 의사이자 헬스케어 분야의 회사를 연이어 창립한 사업가다. 둘째 로런은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을 쓸 만큼 유명한 소설가다. 막내 세라는 임상심리학 박사과정 중인 학생이자 트라이애슬론 종목으로 올림픽에 두 차례 출전한 경력이 있는 세계적인 아이언우먼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강하게 자랐다. 그로프 가족은 봄이 오면 집 수영장의 캔버스천을 걷고 찬물 속으로 뛰어드는 전통을 가졌다. 위험하지는 않아도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그로프 가족의 가치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자립성과 더 관련이 있다. 가족 누구도 “그만하면 됐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항상 “그래 잘했구나. 다음엔 뭘 할 거니”라는 말이 뒤따랐다.

자녀들 간의 경쟁심과 함께 서로 닮으려는 점도 성공의 요인이다. 막내딸 세라는 14세 때 수영으로 8시간 이상 걸리는 15㎞ 호수 횡단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언니를 한번 이겨보겠다는 심산에서 나온 일종의 도발이었다. 가족은 이 도전을 말리지 않고 열심히 도와줬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부모가 아이의 실패 가능성이 많아도 이를 막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새로운 자극에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북돋워줬다. 부모 스스로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사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족 식사 자리에서 받은 훈육과 토론, 대화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도 증명되고 있다. 존 F 케네디의 비서 에벌린 링컨은 “케네디의 탐구심과 진실을 파악하려는 태도는 어린 시절 가족 식사자리에서 받은 훈련의 영향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책은 미국 이야기라 한국과는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도 충분히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례가 많이 담겨 있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예술가 집안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는 배경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강인한 정신력과 자립심, 튼튼한 기초를 바탕으로 건강한 지성을 가진 자녀로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제 The Family Dyna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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